원숭이 떼죽음, 264명 사망..'바이러스 폭풍' 전조인가?
브라질 황열병 사태 촉각
현장 연구자 캐런 스트라이어 교수
"원숭이 몰살 수십년 동안 없었다
인간 황열병 창궐과 연관 의심된다"
전세계 '바이러스 몸살' 연례행사 됐다
기후변화·도시화·해외여행이 가속화
"핵보다 무서워질 것" 경고 잇따라
출처:한겨레 신문, 이근영 선임기자
2012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2013년 중국 조류인플루엔자,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2015년 지카바이러스증후군, 2016~2017년 서아프리카와 브라질 황열. 신종바이러스가 연례행사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다. ‘바이러스 폭풍’을 예측하고 신속하게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할 융합연구단이 떴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인류학과 교수인 캐런 스트라이어는 지난 1월 브라질 남동부 카라칭가시에 있는 연방동물보호구역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갈색고함원숭이들로 시끌벅적해야 할 숲이 “모든 에너지가 우주로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는 수천 마리의 원숭이 사체를 보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스트라이어 교수는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적어도 근래 수십년 동안 자료에는 원숭이의 대규모 폐사 사례가 없었다. 이 지역에 황열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원숭이의 떼주검을 발견해 둘 사이의 연관성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석달 만에 의심환자 1561명
스트라이어 교수는 20여년 동안 10㎢ 면적의 보호구역에서 갈색고함원숭이 등 네 종류의 영장류 보호활동을 하며 연구해왔다. 양털거미원숭이 등 다른 영장류 피해는 없었다. 최강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황열은 모기를 매개로 전파되는 아르보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염병으로 종마다 감염 반응이 다를 수 있다. 종에 따라 바이러스 감염률이 다른 경우는 많이 있다”고 말했다. 황열 바이러스는 발열과 몸살, 두통, 구토 등의 증세를 일으키며 환자에게 황달이 잘 나타나 황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치료를 잘 받으면 치명률이 5%에 그치지만, 중증환자 중에는 20~50%가 사망한다.
원숭이들의 죽음이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사람에게 닥칠 황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전조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스트라이어 교수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한 종류의 영장류가 몇달 사이에 몰살하다시피 한 사실이 다른 영장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일찍이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황열이 유행하기 시작해 지난달 17일 현재 1561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264명이 숨졌다. 황열 발생 지역의 절반이 카라칭가시 등 미나스제라이스주에 속해 있다. ‘카나리아’는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일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병 유행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황열이 앙골라와 콩고민주공화국 등 서아프리카에서도 유행했다. 2015년 12월초에 확산하기 시작해 지난해 10월 유행이 멈출 때까지 두 나라에서 962명이 확진을 받았고 이 가운데 13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에는 임산부가 걸리면 태아에게 소두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지카바이러스증후군이 세계 84개 나라로 퍼져 이듬해 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보건규정(IHR)에는 질병이 퍼져 다른 나라의 공중보건에 위험이 된다고 판단돼 즉각적이고 국제적인 조처가 필요할 때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돼 있다. 비상사태가 발령된 것은 지금까지 네 번째이다. 2009년 멕시코 신종플루(일명 돼지독감),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와 중앙아시아 소아마비 등으로 모두 최근의 일이다. 2012년 시작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2015년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했을 당시 비상사태가 검토됐지만, 세계보건기구는 팬데믹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해 선포를 보류했다. 2013년 중국에서 시작해 2015년까지 2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중국 조류인플루엔자까지 포함하면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미국 보스턴어린이병원이 운영하는 실시간 세계보건지도 ‘헬스맵’(www.healthmap.org)은 언제나 전염병 발생을 알리는 검고 붉은 표시로 덮여 있다. 지도에는 최근 일주일 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감염병 발생 관련 정보들이 지역별로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신종 바이러스 유행이 잦아지면서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17~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안보정상회의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바이러스는 핵무기보다 쉽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세계 국가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대비하지 않으면 자연발생적이건 유전자 조작에 의한 것이건 바이러스 대유행이 가까운 장래에 수천만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이츠는 2000년 국제적 보건의료 확대 등을 목적으로 한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도 “흑사병으로 노르웨이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고 유럽은 200년 동안 침체를 겪었다. 현대에는 질병이 예전처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지는 못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한다. 우리는 감염병의 유행이 가져올 대재앙을 잊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의대 브리검여성병원 의사인 라누 딜런 교수는 지난달 15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발행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팬데믹이 기후변화, 도시화, 해외여행 등으로 과거보다 빈발하고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의 약화나 미국의 과학연구 투자나 유엔 등 해외원조 규모 축소 등은 이런 취약성을 더욱 키울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알던 어떤 질병보다도 더 빨리 광범위하게 생명을 앗아가는 새로운 병원체 망령과 맞닥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에볼라가 기승을 부릴 때 기니 대통령 자문관을 지낸 바 있다.
종간 감염 가능성 높아져
과거에 발생하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가 최근 들어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감염내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환경변화가 중요하다. 현재 인구 1천만 이상 도시(37개)가 대부분 아시아(24개)와 아프리카(3개)에 집중돼 있다. 이 도시들이 제대로 계획되지 않은 채 인구가 집중되다 보니 빈민가 등 전염병이 창궐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황열이나 뎅기열처럼 대유행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늘어난 각종 육고기 소비에 맞춰 공장형 축산이 많아진 것도 조류인플루엔자 등이 발생한 배경이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세포 형태가 아니어서 숙주세포 안에서만 증식이 가능하다. 평균 크기가 1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로, 극초미세먼지(PM1.0)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20세기 초 네덜란드 생물학자 마르티뉘스 베이에링크가 담배모자이크병의 원인을 파헤치는 가운데 처음 발견했다. 그는 박테리아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조밀한 여과기로 걸러도 담배를 병들게 하는 ‘살아 있는 액성 전염물질’을 라틴어로 ‘독’이라는 뜻의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만 서식하기에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생존할 수 없다. 특정 집단에서 바이러스가 지속해서 유행하려면 최소한 1개체 이상의 숙주가 바이러스에 감염돼야 한다. 바이러스의 한 세대는 하루 정도에 불과하다. 변신에도 귀재다. 바이러스가 쉽게 유행하려면 숙주의 면역체계를 이겨내면서도 숙주를 죽일 만한 독성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단순포진이나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나 사마귀를 만드는 파필로마 바이러스 등은 사람에게 큰 해를 주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공생하는 바이러스들이다. 반대로 숙주를 죽일 만큼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는 유행하기가 쉽지 않다. 숙주와 공멸하기 때문에 널리 퍼지지 못하는 것이다. 메르스의 경우 치사율(치명률)은 높은 반면 감염력이 낮다.
바이러스 유행이 지속되려면 숙주 집단 크기가 어느 정도 규모를 넘어야 한다. 가령 전염성이 강한 홍역 바이러스라도 최소 25만~50만명의 인구가 유지돼야 유행이 가능하다.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 곧 동물 간이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종간 장벽을 넘어오는 ‘스필오버’는 더욱 힘들다. 농업혁명은 정착민을 집단화하고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면서 바이러스의 스필오버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가축에서 인간에게 넘어온 대표적 사례가 소에서 기원한 홍역과 낙타에서 온 천연두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생물학과 초빙교수인 네이선 울프는 그의 책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에서 현대의 신종 바이러스 확산 현상은 도로와 철로와 해로와 항로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세계가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동안 인간과 접촉이 없거나 소수에 그쳤던 숲속 야생동물들이 가축을 통해서나 또는 직접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서식지를 빼앗긴 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으면서 스필오버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와 에이즈 바이러스의 경우다.
공중보건-가축방역 ‘원헬스’ 필요
스필오버를 일으키는 동물 가운데 최근 바이러스감염병 전문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박쥐이다. 박쥐는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기에 적당한 동물이다. 우선 수백만 마리가 한 동굴에 서식할 수 있고 여러 종이 섞여 지내기도 한다. 수명이 5~50년으로 비교적 길어 일생 동안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 포유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비행할 수 있어 짧은 기간에 바이러스를 광범위한 지역에 퍼뜨릴 수 있다. 사스는 중국 관박쥐에서, 에볼라는 과일박쥐에서 기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도 박쥐에서 낙타로 옮아간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사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에서 넘어오는 것이어서 대책을 세우기 쉽지 않다. 2003년 중국 사스 이후 박쥐 바이러스 수집 활동이 활발히 전개돼 박쥐 코로나바이러스만 400여종이 수집됐다. 하지만 지구에 바이러스는 8000여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쥐만 해도 1200여종으로 포유류의 25%를 차지한다. 이들 동물과 바이러스를 일일이 연구해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바이러스는 수시로 변한다. 최강석 연구관은 “근본적으로는 동물에서 사람으로 넘어오는 단계를 차단해야 한다. 조기검색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원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사람의 감염병에 대한 대책인 공중보건과 가축에 대한 가축방역을 하나의 연계된 체계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명돈 교수는 “세계 어디서든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현장에 달려가 실제 상황을 경험하고 정보를 얻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현장 문제 해결형’ 최고의 전문가를 보유하기 위해 국가가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글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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