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 꼬꼬무 역대 태풍 매미 피해 경로 풍속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년도 147회 재방송 시즌3
태풍 매미 꼬꼬무 역대 최악 태풍 매미 피해 경로 풍속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년도 147회 재방송 시즌3
[글 포스팅 순서]
1. 예고된 불청객 괴물 태풍 매미
2. 2003년 제 14호 태풍 매미 개요
3. 태풍 매미의 진행
4. 태풍 매미 피해
5.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사고
6. 꼬꼬무 시즌3, 147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7. 꼬꼬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정체 100조 재산 지갑 할피니 146회
8. 의정부 여자친구 연쇄살인 꼬꼬무 살인자의 데칼코마니 뻥식이 사건 최씨 형량 근황 145회
9. 헤이그특사 파견 이준 이상설 이위종 꼬꼬무 고종 황제의 비밀특사 열사 기념관 144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10. 꼬꼬무 앤드류 서 살인사건 징역100년 석방 누나 캐서린 서 근황 142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11. 박해미 남편 프로필 아들 황성재 임성민 전남편 이혼 황민 나이 집 빚 신랑
12. 이상아 전배우자 프로필 전남편 김한석 나이 딸 이혼 자녀 리즈 결혼 윤서진
예고된 불청객 괴물 태풍 매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시즌3)에서는 '예고된 불청객 괴물 태풍 매미' 편이 방영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태풍 발생년도, 2003년 9월 11일 추석 연휴, 한반도에 가을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예보가 들려왔습니다.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수천만 톤의 대형 크레인이 엿가락처럼 휘어질 정도의 살인적인 강풍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기상관측 사상 최초로, 측정 최댓값인 순간최대풍속 초속 60m를 기록하며 무려 131명의 사상자를 낸 괴물 태풍, 그 이름은 ‘매미’였습니다.
“마산 전체가 순식간에 수중도시로 변했어요.”
- 마산 피해 주민
“폭격을 맞은 듯 차창은 부서졌고, 간판은 종이쪽지처럼 날아다녔습니다.”
- 통영 피해 주민
2003년 9월 12일. 마산항 인근 마트(마산 해운프라자) 에서 일하던 영란 씨 역시 악몽 같던 그날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가랑비만 조금 내렸을 뿐, 평소와 다름없던 마감 시간에 정전과 함께 갑작스러운 대피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퍼뜩 위로 올라가이소.
퍼뜩!
그 순간, 당황한 손님 수백 명이 무빙워크로 달려가는 모습을 본 영란 씨는 인파를 피해 직원 전용 창고와 연결된 계단으로 내달렸습니다. 하지만 계단에 발을 들인 순간, 마트 지하에 엄청난 해일이 들이차면서 마산항 일대는 눈 깜짝할 새 망망대해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 통신두절로 인해 집에 두고 온 아이들과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황!
과연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란 씨는 무사히 다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편, 마트와 300미터 떨어진 대형 상가.
이곳 역시 추석을 즐기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비부부 정시현 군과 서영은 양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과외 학생과 함께 지하 3층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갑작스레 찾아온 정전으로 차를 세워둔 지하 1층 주차장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 예고 없이 들이닥친 해일에 중심을 잃게 되고, 이중 두 사람은 물살에 휩쓸려 지하 주차장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더 끔찍한 건 해일에 떠밀려 온 수백 개의 원목이 지하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 구조조차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골든타임을 놓친 채 물속에 갇힌 아들딸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에서 울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풍으로 한순간 목숨을 잃어야 했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재난 생존자들. 매년 찾아오는 이 끔찍한 재앙을 막을 순 없었을까요?
2003년 제 14호 태풍 매미 개요
발생년도, 2003년 9월 6일 15시부터 14일 06시까지 위력을 유지하며 최저 기압 910hPa을 기록한 대형 태풍입니다.
추석 하루 뒤인 9월 12일 15시 제주 남동쪽 해상을 통과해 제주 고산에서 최대순간풍속 60m/s를 기록했으며 21시 경남 고성 일대에 중심기압 950hPa으로 상륙하여 약 6시간만인 13일 2시 30분 경북 울진 앞바다로 빠져나갔습니다.
태풍의 위험 반원인 부산, 경남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공식 피해액은 재산 피해가 4조 2천억, 사망자 및 실종자가 132명이었습니다.
'매미급'이라는 기준이 되는 태풍으로 위협적인 태풍이 등장할 때마다 회자됩니다.
유사한 위치의 태풍으로 1959년 9월 사라와 2002년 8월 루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59년 사라 이후 우리나라 한반도 상륙 태풍 중 가장 강한 역대급 태풍입니다.
게다가 한반도를 강타한 시기도 사라와 같은 추석 연휴였습니다.
역대 최고 피해액의 루사가 지나간 지 단 1년 만에 연속으로 최강급 태풍이 상륙한 데다, 역대급 태풍 루사와 매미의 유형이 상반되는 부분이 많아서 루사와 함께 아직도 태풍의 전투력 측정기로 인용되고 있는 태풍입니다.
매미(Maemi)는 북한이 제시한 태풍명으로, 문자 그대로 곤충 매미를 뜻합니다.
태풍 매미의 진행
한반도를 강타한 시기도 사라와 같은 추석 연휴였습니다.
역대 최고 피해액의 루사가 지나간 지 단 1년 만에 연속으로 최강급 태풍이 상륙한 데다 루사와 매미의 유형이 상반되는 부분이 많아서 루사와 함께 아직도 태풍의 전투력 측정기로 인용되고 있는 태풍입니다.
셀마, 프라피룬, 루사 수준의 크나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2000년 프라피룬이 강풍으로, 2002년 루사가 영동 지방에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혔다면 매미는 여수와 진주에 200~300mm 넘는 강수와 제주와 부산/경남 해안 지역에 강풍과 해일로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특히 강풍은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정도였는데 이는 50m/s까지 견디게 설계되었다는 부산항의 크레인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제주에서는 순간 최대 풍속 60m/s가 두 곳에서나 관측되어 3년 전 프라피룬이 세운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풍속계의 측정 상한이 60m/s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욱 강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는 걸 볼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매미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게 상대적으로 약한 왼손 펀치인 가항반원(안전반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다만 매미는 위험 반원인 영남 지방에서 큰 피해를 줬습니다.
가항 반원은 세력이 강한 채로 지난 제주도와 상륙 직후인 전남 남해안에서 큰 피해가 났습니다.
하필 불과 1년 전에 루사가 한반도에 22시간이나 머물며 엄청난 비로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는데 그 뒤를 매미가 이어 와서 또 뒤집어 놓고 가고 이후에도 수년간 태풍이 와서 루사로 입은 재해 복구를 하기도 전에 또 태풍으로 인한 재난을 맞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강수량을 200mm~300mm 넘는 비와 엄청난 강풍으로 인해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힌 나머지 결국 매미와 루사는 영구제명되었습니다.
참고로 매미의 대체명은 무지개였는데 2015년 중국 남부에 큰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제명되어 수리개로 바뀌었습니다.
얄궂게도 한반도에서 제출한 순우리말 이름이 두 번이나 제명되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으로 왔던 태풍들 중에는 매미보다 더 강했던 태풍들도 여럿 있습니다.
2012년에 내습했던 산바는 900hPa, 4년 후 찾아왔던 차바는 905hPa로 최전성기로 따지면 매미보다 근소하게나마 더 강했습니다. 다만 상륙 당시 세력으로 따지면 매미가 압도적으로 강했습니다.
이렇게 매미가 크게 약화되지 않고 상륙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최전성기를 맞은 위치가 일본 오키나와현으로 다른 태풍에 비해 꽤 고위도에 속했고 두 번째로는 당시 남해안의 수온이 28도 가량으로 9월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뜨거워서 계속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세번째는 2010년 곤파스급의 빠른 이동 속도였는데 최전성기 시점에서 한반도 상륙까지 불과 36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즉 태풍에 최적화된 환경과 빠른 이동 속도에 힘입어 크게 약화되지 않고 상륙해 큰 피해를 입히고 갔습니다.
태풍 매미 피해
공식 피해 집계에 따르면 사망(한국 117명, 일본 3명)·실종자가 13명, 재산 피해는 4조 2천억여에 달하며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수많은 지역이 정전 피해를 입었습니다.
2003년 이전에 심은 가로수들은 이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기울어진 뒤 강전정을 당해 볼품없게 변해 버렸습니다.
2000년대 연이어 발생하던 참혹한 태풍 피해로 인해 부작용도 생겼는데 곤파스 같이 수도권을 관통하거나 매미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태풍이 아니면 전국권 뉴스 속보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매미는 이 피해 때문에 제명되어 무지개로 대체되었고 무지개도 2015년 중국에 끼친 피해로 제명되어 수리개로 대체되었습니다.
사라, 루사와 함께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평가됩니다.
매미 이후 볼라벤, 산바, 차바, 링링, 콩레이, 마이삭, 하이선, 그리고 2022년의 힌남노까지 최전성기 기준으로는 매미에 필적하거나 더 강력한 태풍들이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내습했지만 급격한 약화, 경로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매미의 위력을 능가하지는 못했습니다.
거대한 태풍의 강력한 풍속과 낮은 기압은 마산시 해안가에 궤멸적인 상처를 남겼습니다.
기압 때문에 부풀어오른 바닷물이 만조와 강풍이 겹쳐 5m짜리 거대 해일을 몰고 왔던 것입니다.
해일은 부두를 넘어 해안가에 있는 아파트단지와 상가의 지하주차장들을 휩쓸었습니다.
바닷가에 붙어 있는 아파트는 2층까지 물이 차올랐으며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경남대 앞 댓거리는 부두로부터 1.2km나 떨어진 내륙인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100년 전까지 바다였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차츰차츰 매립하던 곳이었습니다.
옛 어른들은 정확히 매립 전 해안선까지 물이 들어온 것이라고 증언했는데 정말로 그랬습니다.
마산은 이 해일 때문에 수십명의 희생자를 내는 등 당시 가장 처참하게 박살났던 도시입니다.
심지어 이후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는 20세기 중반에 퇴출된 터돋움집이 21세기에 부활했고 서항부두 인근에는 당시의 피해와 사망자를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시 마산의 궤멸적인 피해로 인해 군부대에서는 마산을 고향으로 하는 병사에게 특별 휴가를 보내주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 복구에 힘썼습니다.
거제시로 들어오는 송전탑이 죄다 쓰러지며 거제 전역에 4일간 정전이 일어났습니다.
삼성, 대우 두 곳의 조선소도 크레인이 쓰러지는 등 개판이 된 것은 덤. 장승포와 옥포, 지세포는 방파제를 넘어 해일이 덮쳐 해안가의 주거지와 상가를 쓸어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바닷물이 마구 들어와 자동차들이 죄다 침수되기도 했습니다
거제도에 위치해 있는 관광지의 하나인 매미성은, 태풍 매미 때문에 만들어진 제방 시설이라 매미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북한은 9월 15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태풍 '매미'가 몰고온 강풍과 폭우로 남조선 여러 지역에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간략하게 보도했습니다.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사고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사고는, 마산 해운프라자는 상가와 주거 공간이 함께 있는 지하 3층, 지상 6층의 복합 건물입니다.
그 지하주차장에는 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풍 매미가 몰고 온 거센 해일로 인해 부두에 있던 통나무들이 무려 1.3km나 밀려와 지하주차장 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9월 13일 오전 3시 건물이 물에 잠기면서 건물 지하 노래방 등에 10-27명이 갇혀 있다는 신고가 최초로 접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입구가 통나무로 막혀 있었고 노래방 등은 지하 2, 3층에 위치해 있었던 데다 지하 1층이 주차장이었던 탓에 물이 아래로 흘러들며 약 9천t의 물이 지하에 차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구조작업은 계속해서 지연되고 말았습니다.
함께 건물에 있던 술집 종업원 이모(여.26)씨, 술집 지배인 옥모(여.27)씨, 손님 김모(여.25)씨, 술집 종업원 정모(여.21)씨, 손님 정모(남.45)씨 등 몇 명은 수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해 생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안모(여.24)씨는 사건 직전 가족에게 "지금 노래방에 있다"고 전화한 뒤 연락이 두절되어 경찰이 수색에 나섰으나 사실 부상 정도가 심해 가장 먼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구조대 간의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연락이 끊겼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지하 3층에 있던 노래방에 있던 사람들 중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특히 추석을 맞아 노래방을 찾은 결혼을 앞둔 남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했던 여성 등이 익사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7년에 방송된 SK텔레콤의 기업광고 “사람을 향합니다“에서 이 사고로 딸인 서영은씨와 예비사위를 잃은 서의호 교수의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딸을 잊지 않기위해 추모 카페를 개설하거나 유고집을 내기도 하는등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활동중입니다.
꼬꼬무 시즌3, 147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 친구 게스트로는 세븐틴 디노, 배우 이규형, 치타가 출연했습니다.
‘세븐틴이 곧 장르다!’ 비주얼 천재, 귀여움 천재, 경청 천재, 리액션 천재!
세븐틴의 황금 막내 디노가 꼬꼬무에 첫 방문,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함께했습니다.
반가운 신곡 공개에 이어, 폭풍 공감 모드로 올라운더 리스너의 면모까지 선보인 디노!
“전부 제 또래네요...” 녹화 도중 그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오늘만큼은 특별하게!
주인 없는 방(?)에 홀로 앉아 장현성을 맞이한 배우 이규형.
신 스틸러로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을 통해 미친 존재감을 발산했던 그가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선배 장현성과의 인연 때문이라는라고 합니다.
오션뷰 아파트에 나타난 게 뭐냐는 질문에 엉뚱하게 “참치?”를 말하다가도 곧바로 연기파 눈빛 장착! “배우로서 이런 연기를 종종 해왔지만...” 남다른 감수성을 보이던 그는, 참혹한 구조 현장을 보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7회차 출연!
언제 봐도 반가운 단골손님 치타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재방문했습니다.
꼬꼬무 경력직답게 백 퍼센트 정답률을 자랑하는가 하면, 부산 토박이로서 직접 만났던 태풍 매미의 소름 돋는 경험담까지! “도대체 왜 이러냔 말이야!” 과몰입하던 치타는 막을 수 있었던 태풍 피해에 격분하고 말았습니다.
꼬꼬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정체 100조 재산 지갑 할피니 146회
의정부 여자친구 연쇄살인 꼬꼬무 살인자의 데칼코마니 뻥식이 사건 최씨 형량 근황 145회
헤이그특사 파견 이준 이상설 이위종 꼬꼬무 고종 황제의 비밀특사 열사 기념관 144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꼬꼬무 앤드류 서 살인사건 징역100년 석방 누나 캐서린 서 근황 142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박해미 남편 프로필 아들 황성재 임성민 전남편 이혼 황민 나이 집 빚 신랑
이상아 전배우자 프로필 전남편 김한석 나이 딸 이혼 자녀 리즈 결혼 윤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