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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무력투쟁2

항일무력투쟁, 독립운동 아방가르드 ‘의열단 창단 제101주년’ 앞두고(2) 항일무력투쟁, 독립운동 아방가르드 ‘의열단 창단 제101주년’ 앞두고(2) 상생문화연구소 정원식 연구위원 (본 칼럼은 2019년 11월 9일 경향신문에 필자가 기고했던 것을 대폭 수정 보완) ‘약산 김원봉 지휘 하에 일사분란한 작탄활동 전개’ 1920년 3월 밀양·진영 폭탄반입사건을 시작으로 동년 12월 밀양경찰서 폭탄투척과 1921년 9월 조선총독부 폭탄투척, 그리고 1923년 1월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의거 등 의열단은 반일 무력투쟁을 전개해 일본 제국주의 세력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에 일제는 김원봉에게 김구보다 40만원이나 많은 무려 100만원(현 가치 320억원)의 현상금을 내걸며 강력히 대응했다. 초기 의열단의 중요한 의거활동을 독립운동사 자료를 기초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밀양·진영.. 2020. 8. 1.
항일무력투쟁 독립운동 아방가르드 ‘의열단 창단 제101주년’을 앞두고 항일무력투쟁 독립운동 아방가르드 ‘의열단 창단 제101주년’을 앞두고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정원식 연구위원 (본 칼럼은 2019년 11월 9일 경향신문에 필자가 기고했던 것을 대폭 수정 보완) 금년 11월 9일과 10일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제2차 세계대전시 항독무장단체)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의열단(1919년~1935년)이 제101주년 되는 해이다. 항일무장단체인 의열단은 일본제국을 향해 적극적인 작탄활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101년 전 1919년 11월 9일, 시베리아의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친 늦은 밤 만주 길림성 중국인 반씨(潘氏)가 운영한 화성여관에 조선인 열혈청년 13명이 모였다. 이날 모인 13명의 청년 독립지사들은 도원결의를 통해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소위 항.. 202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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