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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묘족 차오루는 치우천황의 후손

by 충격대예언 2017. 9. 7.

묘족 차오루는 치우천황의 후손

 

 

차오루는 묘족 출신 (사진='라디오스타' 캡쳐)

 "한국에서 활동하는 묘족출신은 나 밖에 없는 거 같다. 희귀템이다" 


걸그룹 피에스타 출신의 차오루가 한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한말이다. 차오루는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가수 중 유일한 묘족苗族  출신이다. 그녀는 후난 성 장가계 출신으로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묘족 출신이며, 2004년 중국에서 솔로로 데뷔하여 중국중앙텔레비전에서 10대 신인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한국과의 인연으로 현재 국내 연예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묘족은 중국 남방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묘족의 인구는 약 900만명으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네번째로 많다. 주요 분포지는 귀주성으로 중국 내 묘족 전체의 대략 50% 정도가 모여있다고 한다. 

 

STB상생방송 다큐 치우천황은 살아있다 장면 속 묘족

묘족선조 치우천황
이 묘족의 선조는 치우천황이다. 운남성 곤명 운남 민속촌에 가보면  “묘족 선조 치우제상” 이라는 글자를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묘족(苗族)은 치우(蚩尤)의 제사를 지낸다. 치우천왕을 기리며 <치우만가>라는 노래를 부른다. 묘족은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섬겨 온 동방족인 것이다. 

 

치우동상 (묘족자치주)

치우는 누구인가?  환인천제가 다스린 환국을 이어 배달국은 1565년간 18명의 환웅이 다스리게 된다. 당시, 서기전 2707년에 즉위하여 109년간 배달국을 다스린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천황이 곧 치우천황이다. 

당시 염제 신농씨 나라의 8대 마지막 임금인 유망이 쇠퇴의 길을 걷자 치우천황은 웅도(雄圖)의 대망을 품고 서방으로 출정하여 모든 제후들을 정벌하고 유망의 수도를 함락시킨다. 이 때 유망의 제후로 있던 헌원이 천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이에 대항해 온다. 그리하여 동방 상고사에 가장 유명한 탁록 대전투가 벌어져, 10여 년 간 무려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간다. 치우천황은 도술로 큰 안개를 지으며 최초로 제작한 금속병기를 동원하여 마침내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는다.

이렇듯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武神)의 시원이 되어 수천년 동안 동방의 조선족은 물론 한나라 진나라의 백성들에게까지 위력적인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된다.   

 

산동성 료성시 양곡현에 있는 치우 동상 (출처: 百度百科)

묘족이 남쪽으로 내려간 이유
묘족이 지금 살고 있는 땅으로 내려가게 된 이유는 요순시절과 관계가 있다. 당시 양자강 이남의 동정호와 팽려호 일대에는 구려의 후손인 유묘 혹은 삼묘라 불리는 부족이 있었는데 요임금의 아들 단주와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려 하자 이 소식을 듣고 승복하지 않던 삼묘의 족장이, 단주가 오자 곧바로 세력을 연합하여 요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요의 군대는 단주와 삼묘의 연합군을 궤멸시켰고, 이 싸움에서 삼묘 족장이 피살당하고 단주도 전사했다. 이것이 묘족이 남쪽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묘족과 한민족은 닮았다.
한민족과 묘족은 닮은 구석이 많다. 2003년 단국대 생물과학과 김욱 교수는 동아시아인 집단에서 추출한 표본을 대상으로 부계를 통해 유전되는 Y염색체의 유전적 변이를 분석했다. 이 결과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 동남아시아인인 중국 동북부 만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했고, 중국 묘족이나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시아인과도 비슷했다고 한다. 이는 한민족이 크게 북방계와 남방계의 혼합 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묘족과 한국인 간의 유사성도 보여주고 있다. 

동방 배달족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모시는 묘족. 그들의 후예로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오루에 친근감이 드는 것은 단지 그의 예능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차오루의 건투를 빌어본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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