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죽음의 골짜기 대전 골령골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보도연맹 사건 150회 시즌3
[글 포스팅 순서]
1. 죽음의 골짜기
2.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3. 대한민국 국군이 자행한 학살
4. 북한군(조선인민군)이 자행한 학살
5. 희생자 유해 발굴 및 평화공원 조성
6. 꼬꼬무 시즌3, 150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7. 꼬꼬무 유영철 아들 쌍둥이 여동생 사형수 사형 집행 근황 사건내용 가족 출소 149회 시즌3
8. 꼬꼬무 다단계 사기 SMK 숭민그룹 회사 이광남 자석요 인간사냥 피라미드 덫 148회 재방송
9. 태풍 매미 꼬꼬무 역대 태풍 매미 피해 경로 풍속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년도 147회 재방송 시즌3
10. 꼬꼬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정체 100조 재산 지갑 할피니 146회
11. 의정부 여자친구 연쇄살인 꼬꼬무 살인자의 데칼코마니 뻥식이 사건 최씨 형량 근황 145회
12. 나는 솔로 23기 현숙 직업 인스타 가방 나솔 현커 23기 영호 변호사
13. 강철부대w 707 이현선 인스타 직업 사이렌: 불의 섬 특수부대 더블유
죽음의 골짜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시즌3)가 대전 골령골 학살 사건을 조명했습니다.
'꼬꼬무'는 '죽음의 골짜기' 편으로, 역사에 숨겨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뼈 골짜기'의 비밀을 공개했습니다.
때는 1993년, 대전시 동남쪽에 위치한 한적한 산골짜기에서 한 젊은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심규상, 직업은 기자였습니다.
골짜기를 오가며 발 밑을 살피던 심 기자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뼈.
골짜기 여기저기에 사람의 뼈가 널려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심 기자는 마을회관에 찾아가 뼈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골짜기에 대한 말을 꺼내기만 해도 바짝 경계하길 며칠, 심 기자의 노력에 경계심이 풀린 어르신들이 뜻밖의 말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전부터 그 골짜기에서 사람 뼈가 많이 나왔다"며,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골령골'이었습니다.
뼈 '골'에 산봉우리 '령', '뼈가 산처럼 쌓여 있는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묻혀있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대체 골령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진상이 공개되었습니다.
그 비극적인 사건을 알기 위해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때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명을 틈타 북의 기습 남침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전쟁의 여파가 채 닿지 않은 충남 서천에서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남식 씨의 집에 경찰관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집을 나선 남식 씨의 아버지는 그 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전선에서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그때, 후방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행방불명된 것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57년이 지난 2007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골령골에서 유해발굴이 시작됐습니다.
조심스럽게 땅을 파헤치자 수많은 유골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던 참혹한 비밀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유해발굴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지점부터 8지점까지, 골짜기를 따라 1km가 넘는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최대 민간인 학살터이자 최대 7천 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의 영혼이 깃든 골짜기.
과연 골령골에 묻힌 영혼들은 편히 눈감을 수 있을지, '장트리오'가 숨겨진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6.25 전쟁 중 대전형무소(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출입국 관리사무소 위치)의 수감자들을 상대로 일어난 학살입니다. 첫 번째 학살은 1950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발생했고, 두 번째 학살은 1950년 9월에 조선인민군에 의해 발생하였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가 시작되었으며 북한군에 의한 학살 사건은 2008년, 한국군에 의한 학살은 2010년에 진실규명이 되었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이라고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최소 4천여 명에서 많게는 7천여 명까지 학살돼 묻힌 곳으로 6.25 전쟁 시기 대한민국 내 단일지역 최대 규모 희생지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이 자행한 학살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대한민국 군경이 대전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사범, 재소자, 미결수, 보도연맹원들 등을 인근 산내면 야산에서 학살한 사건입니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충청도 지역의 일부 보도연맹원과 4.3 사건, 여순 사건 당시 일부 수감자들이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4.3 사건 관련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희생 규모는 첫 번째 시기인 7월 1일까지 1,400명, 두 번째 시기에 1,800명, 그리고 마지막 시기에 1,700명이 희생되어서 4,900여명이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많지만 이외에도 여러 주장이 있어서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1949년부터 대전형무소에 좌익사범들이 상당히 수감되기 시작했는데 북한의 남침 이후 보도연맹원이 잡혀 들어와서 수감자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6.25 전쟁의 전개로 인해 대전이 함락될 위기에 빠지자 정부에서는 재소자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214쪽)
당시 대전형무소에 있었던 교도관의 증언에 따르면 윗선의 지시에 따라 사형수, 무기징역수부터 대한민국 육군 헌병대나 경찰에 이첩하여 육군 헌병, 경찰들이 트럭에 사람을 싣고 인근 야산에 데리고 가서 무더기로 사람을 처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217쪽)
1950년 7월 1일 교도소 수용 능력의 한계로 일반 단기사범들을 석방한 후(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215쪽) CIC 및 헌병들이 재소자 인도 요구를 하였습니다.
7월 2일부터 재소자를 주먹구구식으로 분류하여 헌병은 보도연맹원, 좌익사범, 장기형 기결수, 미결수, 심지어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까지 모조리 낭월동 골령골로 끌고 가서 처형했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216쪽)
당시 집행 참관인이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사람을 막대기나 나무에 매달거나 묶어 총살했지만 나중에는 청년방위대가 판 50m 길이 구덩이 앞에 끌려온 사람들을 일렬로 구덩이 쪽으로 눕게 한 뒤에 뒤통수를 쏘아 죽였다고 합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222쪽) 이런 짓을 국군이 대전에서 후퇴하기 전인 7월 16일까지 지속하였다. 증언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 및 군경 당국의 형무소 재소자, 기결수와 미결수 살해는 법적 요건의 측면에서 많은 위법성이 드러난다고 판단했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316쪽)
학살의 원인은 전쟁 발발 이후 보도연맹원이 북한군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고 본 이승만과 수뇌부들의 판단이었습니다.
상부에서는 보도연맹원을 모조리 붙잡아 처단하라는 지시를 하달하였고 당시 전국에서 군인이나 경찰이 동네에서 보도연맹원을 소집하여 인근 형무소에 집어넣거나 바로 학살했습니다.
골령골에서 학살 지시를 한 사람은 당시 대전지검장 정재환이었고 직접 시행한 사람은 몇 년 전 제주 4.3 사건에서 학살을 했던 송요찬 대령으로 당시 육군 2사단 헌병사령관이었습니다.
이후 유족들은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사회에서 빨갱이로 몰리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317쪽)
1999년 미합중국 법무부에서 미합중국 육군 장교가 남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한편 위닝턴 기자는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좌익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 등 7000여 명이 대전 골령골에서 한국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후 암매장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기사는 "학살은 미국 고문관의 감시 하에 진행됐다"고 썼다. 민간에서 진행된 조사를 통해 미국이 학살에 생각보다 더 깊이 개입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첫 번째 학살은 독재정권 시기에 은폐되었지만 대한민국의 학살이라 많은 국민을 구덩이 파는 데 동원했다 보니 구덩이 파는 데 동원되었던 사람들과 군인들이 학살 현장을 증언하면서 조사 시작 후 증언이 많이 나왔습니다.
학살로 인해 한동안 골령골에는 땅에서 핏물이 배어나오고 근처 냇물은 붉게 변했으며 물에서는 피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군(조선인민군)이 자행한 학살
1950년 7월 21일에 북한군은 대전을 점령하였고 일부 인민군은 곧장 산내 골령골의 집단 희생을 인지하였습니다.
이후 북한군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는 범죄혐의로 한국군 포로, 우익 인사, 군인, 경찰, 공무원, 서북청년단을 모조리 찾아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대전 경찰서, 대전형무소에 분산 수감했다고 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13쪽)
수감 과정에서 북한 정치보위부는 수감자에게 '양민을 투옥하고 학살했다'는 내용을 쓰도록 강요했으며 자술서를 쓰지 않는 사람은 구타하였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98쪽) 끝까지 자술서를 쓰지 않았던 사람은 사건 발발 며칠 전 석방됐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국군 장교와 판사, 검사는 모조리 사형시키고 경찰, 군인, 면장, 동장, 반장 등은 면밀히 조사하여 사상검증을 하였습니다. 이후 수감자는 인민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려고 했으나 UN군과 한국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1950년 9월 25일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급히 후퇴하게 된 북한군이 UN군 및 한국군에 이로운 행동을 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모조리 처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윽고 9월 25일 밤부터 9월 26일까지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사람을 모조리 인근 야산이나 우물에 끌고 가서 학살했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13쪽) 총살 이외에도 곡괭이 등으로 찍어 죽이거나 산 채 우물에 처넣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는 아일랜드인 수도자, 우익 인사들이 학살되었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17쪽) 대전 경찰서에는 포로, 부상자들이 주로 수감되었고 9월 27일에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에는 시간이 급박한 관계로 경찰서 앞마당으로 모조리 끌고 와서 남아 있던 국군 포로들을 벽에 묶어놓고 모조리 총을 쏘아 학살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20쪽)
조사 결과 학살된 인원은 총 1,557명이었습니다.
두 번째 학살은 1960년대에 진상 규명을 많이 한 편이라 비교적 조사 자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23쪽)
희생자 유해 발굴 및 평화공원 조성
유해발굴은 2015년에 시작됐고, 평화공원 조성 사업은 사업비 부족 등으로 지지부진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부임 이후 황 청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기존 예산 295억 원에서 402억 원으로 국비를 증액하며 국비를 증액하는 등 사업에 탄력을 받았습니다.
2021년 9월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 집단 매장된 유해 천여 구가 발굴되었습니다.
희생자들의 유해 1천 441구가 발굴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러한 황 청장의 노력에 힘입어 유해발굴사업은 2월 마무리를 짓게 되었습니다.
평화공원 사업은 토지 매입은 80% 이상 됐지만 물가 상승으로 총 사업비가 591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타당성 재조사 등 행정절차가 발목을 잡혔고, 이후 정권이 교체되고 황인호 청장 본인 역시 재선에 실패하면서 흐지부지되었습니다.
2023년 열린 황 청장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사건희생자 유족회장이 참석하고 해당 내용이 다시 한 번 언급되며 재조명되었습니다.
유전자 감식 예산이 2022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2023년부터 그동안 발굴된 1,361명의 희생자 유해에 대한 검체 수집과 유가족의 유전자 신원확인정보자료 구축 사업이 본격화될 예정으로 전해졌습니다.
꼬꼬무 시즌3, 150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꼬꼬무' 이야기에는 배우 조우진, 조달환, 가수 헤이즈가 이야기 손님 게스트로 함께 했습니다.
조우진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딸의 빠진 치아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놓았다며 진정한 '딸바보'의 면모를 뽐낸 조우진은 '그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며 몰입했습니다.
헤이즈는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자리했습니다.
학창 시절 근현대사를 좋아했지만 '그날'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 헤이즈는 녹화 말미, "우리 모두가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조달환은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등장했습니다.
'꼬꼬무'에 꼭 나오고 싶었다는 조달환은 장현성의 질문에 정답 행진을 이어가며 애청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유족의 사연이 담긴 시를 읽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오랜 세월 동안 묻혀있던 비극적인 이야기. '꼬꼬무'의 '죽음의 골짜기' 편에서의 이야기 손님 게스트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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