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 이유와 배경// 홀로코스트 유대인의 역사의식
유대인 학살의 이유/배경
유대인 학살의 원인으로 히틀러 개인의 삶의 경험이 지목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는데, 그는 미술학교의 유대인 심사위원들이 자신을 불합격시켜서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유산과 연금으로 생활하던 히틀러는 독신자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하층 시민의 열악한 생활을 알게 되면서 당시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유대인을 혐오하는 독일 민족주의자, 반유대주의자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동시에 당시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의견도 많다. 19세기 후반 비스마르크의 부국강병 정책으로 독일이 크게 부흥하게 되는데 이때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독일로 대거 몰려들었다. 유대인들은 제조업과 금융산업, 해상무역업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독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히틀러가 활동하던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유대인들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했다.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유럽의 반유대 정서는 뿌리가 깊다. 특히 중세에 반유대주의가 강했던 것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교리 차이 때문이었다. 유대교인들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예언자 중의 한 명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아직 구세주가 오지 않았고, 자신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중세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기독교인들은 끊임없이 유대인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했고, 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박해를 가했다.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반유대주의 정서를 키웠고 종교적 살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대인의 역사』의 저자 폴 존슨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천 년에 걸친 기독교도와 성직자들, 평민들, 세속인들, 이방인들의 반유대주의적 증오가 히틀러에 의해 하나의 거대한 괴물로 합쳐져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유대인들의 역사의식歷史意識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나치의 민족말살 행위를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전범들을 색출해 법정에 세웠다. 독일은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폴란드, 프랑스와 함께 공동 교과서를 집필하고, 철저한 역사 교육으로 나치의 만행을 참회하고 있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며 과거사 청산을 계속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역사를 절대 잊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독립기념일 전날을 쇼아의 날로 정해서 독립을 기뻐하기 전에 민족의 고난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예루살렘의 쇼아 추모관에 있는 글귀가 유대인들의 역사의식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용서는 하지만 망각은 또 다른 방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참고자료
폴 존슨, 김한성 옮김, 『유대인의 역사』, 포이에마, 2014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을유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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