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권인숙 의원 프로필 조영래 변호사 문귀동 근황
꼬꼬무 70회 게스트
[글 포스팅 순서]
부천 경찰서 학생운동가 권인숙 성고문 사건 개요
사건의 전개
언론의 사건 왜곡
사건의 반전
조영래 변호사 프로필과 폐암으로 별세
권인숙 현재 근황 및 프로필
문귀동 현재 근황
꼬꼬무 70회 이야기 손님 게스트
조현철 배우 프로필 가족 형 인스타 DP 나의 변호사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꼬꼬무 C-123기 추락사건 봉황새 1호 작전 한라산 군용기 수상한 비밀작전 69회 게스트
꼬꼬무 하판락 착혈귀 착혈고문 친일경찰 반민특위 해체 습격사건 노덕술
고미영 산악인 김재수 대장 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 꼬꼬무 시즌3
부천 경찰서 학생운동가 권인숙 성고문 사건 개요
1986년 6월 5일 경기도 경찰국 부천경찰서의 수사과 조사계 소속 형사였던 문귀동 경장이 학생운동가 권인숙을 성고문한 사건입니다.
1988년까지 2년간의 재판 끝에 가해자가 처벌되었다. 흔히들 부천서 성고문 사건, 심지어 당시에는 성고문이라는 표현도 제외하고 "부천서 사건", 또는 "부천서 권 양 사건"등으로 에둘러서 표현되었던 사건입니다.
가해자 문귀동은 사건 당시 경찰관으로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던 권인숙에게 성고문을 가했습니다.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 여성 인권 의식 향상, 성범죄, 성폭행 부조리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암암리에 행해지던 부조리를 시민들이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태 당연시되던 시골이나 소규모 집단, 끼리끼리 문화,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기,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인한 부조리를 더이상 참지 않고 폭로하는 문화 등이 1990년대 한국 사회에 포괄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은 경기남부도경 부천소사경찰서가 1982년 개서된 이래 4년 만에 있었던 흑역사였습니다.
부천시에는 1981년 이전까지만 해도 부평경찰서가 치안을 담당했으나, 행정구역의 불일치, 비대한 관할 구역 문제 등으로 인해 부평경찰서의 구역을 당시 북구 일대(서구와 계양구 포함)로 축소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의 전개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대대적인 공안 탄압을 가져오게 됩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야당인 신한민주당과 재야 운동권 세력 간의 신뢰가 깨진 것이었습니다.
깨진 신뢰의 틈을 비집고 전두환 정부는 재야 운동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고, 사건이 일어난 인천 지역의 노동자 단체에 대한 탄압은 그중 가장 심했습니다.
당시 인천 지역에는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소위 '학출'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런 학출들이 대대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학출들은 학력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주민등록 그대로는 취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대부분 위조한 상태였고, 이는 실정법 위반으로 검거되었습니다.
여기에 5.3 인천항쟁의 지도부 격인 인물들이 모두 도피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해 수사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되던 와중이었습니다.
1986년 5월 21일, 갓 학출이 되어 부천시 지역의 노동 운동에 뛰어든 권인숙이라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때 제적되어 경기도 부천시에 소재한 (주)성신이란 가스배출기 제조업체에 '허명숙'이란 가명으로 위장 취업했습니다.
5.3 인천항쟁으로 인해 탄압이 격렬해지던 1986년 6월 4일 밤, 권인숙은 그녀의 정체를 의심한 통장의 신고로 자취하던 아파트에서 검거되었습니다. 조사 도중 권인숙이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고, 여기에 당시 수배 중이던 양승조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 위원장을 비롯한 고위 지도층의 소재 또한 추궁받았습니다.
권인숙은 5일까지 수사를 받았고, 6일 새벽에 경찰서 상황실로 다시 끌려나갔습니다.
그녀가 자백을 하지 않자 옥봉환 당시 서장이 분노했고, 당시 수사과 조사계 소속 형사였던 문귀동 경장에게 수사를 지시하면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끌려 온 그녀는 문 경장에게 6월 6일과 7일 2차례에 걸쳐 4층 조사실에서 성고문을 당했습니다.
6월 16일부터 인천소년교도소로 이감된 권인숙은, 처음에는 자살충동도 일었지만 곧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맞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의 고문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도소 내 양심수들이 연대 단식을 했고, 그녀도 몸을 추스린 후 6월 28일부터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이어 그녀는 7월 3일부터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권인숙은 공문서변조 및 동행사, 사문서변조 및 동행사, 절도, 문서파손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가해자인 문귀동은 권인숙을 명예훼손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발했습니다.
그녀의 변호인단 9명이 7월 5일에 문귀동 경장과 옥봉환 서장 등 관련 경찰관 6명을 상대로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고, 문귀동 경장이 무고 혐의로 맞고소하면서 사건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언론의 사건 왜곡
검찰은 "사건 당시 성모욕 행위는 없고, 폭행만 있었다"며 공식 발표를 하는 동시에 가해자 문귀동에겐 "문씨가 경찰로서 직무에 집착하다 보니 우발적으로 과오를 저질러 파면되긴 했으나, 10년 이상 경찰에서 성실히 근무한 바 있고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있다"며 기소유예 처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한 저 유명한 말이 "권 양의 '성모욕' 주장은 급진 좌경세력이 상습적으로 하는 의식화 투쟁의 일환으로, 혁명을 위해서라면 성까지도 도구화하며 수사 과정에서 '성모욕'이란 허위 주장으로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술책이다"라는 요지로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미 검찰은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귀동을 조사해서 그가 실제로 성고문을 가했음을 확인했는데도 정권의 안위를 위해 검찰은 진실을 묻어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치안본부는 문귀동 경장을 파면하고 옥봉환 부천경찰서장과 수사과장 유희수 경감, 조사계장 박성룡 경위 등을 경질하는 선에서 끝내고자 했습니다.
12월 4일 인천지법은 권인숙에게 공문서변조 등의 죄를 적용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고, 7일 후 권인숙이 서울고법에 항소했으나 1987년 3월에 항소마저 기각된 뒤 4월에 권인숙 본인과 변호인단이 대법원에 상고 포기서를 제출하자 권인숙은 결국 1년 6개월의 징역형이 확정됐습니다.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은 "운동권이 마침내 성까지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역공을 가하며 언론에겐 보도지침을 통해 '부천서 성폭행 사건'이라 하지 말고 '부천서 사건'이라 쓸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이런 보도지침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장세동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은 물론이요, 언론의 부도덕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준 사건이었습니다.
언론은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들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하고, 검찰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와 정권의 보도지침에 따라 앵무새마냥 읊을 것을 강요했습니다.
사건의 반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은 거짓의 역사를 끝냈습니다.
변호인단이 1988년 1월에 '재정신청 조속 처리 촉구서한'을 대법원에 내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재정신청을 법원이 전격 받아들여 같은 달 29일 대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수용했습니다.
문귀동은 4월 9일 구속된 후 7월 23일 인천지법 1심에서 형량을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아 교도소로 직행했고, 이에 문귀동이 항소에 상고까지 했으나 같은 해 12월 6일 서울고등법원, 1989년 3월 14일 대법원에서 같은 형량이 유지됐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특별검사가 임명되어 이 사건을 맡았습니다.
반면 권인숙은 6.29 선언 직후인 1987년 7월 8일에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여론에 따라 가석방됐고, 9월 14일 한국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86 여성운동 인물'로 선정됐습니다.
1988년 들어서야 권인숙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2년여만에 진행되어 1989년 6월 13일 서울지법은 권인숙에게 위자료 3,000만원을 배상토록 했고, 권인숙은 이에 항소하여 1990년 1월 서울고법에서 1,000만 원이 증액된 4,000만 원을 국가가 배상하도록 판결을 내렸고, 3개월 뒤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조영래 변호사 프로필과 폐암으로 별세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을 변호하고 가해자 문귀동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는 등의 활동으로 인권 변호사로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조 변호사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고문 피해자 권인숙 양을 접견하면서, 또 검찰과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이 사건을 은폐하는 시도를 보면서, 이 사건이 부도덕한 정권이 몰락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또한 그것만이 권양을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시 권 양 변호를 위한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 부천경찰서 서장과 고문 형사 등 성고문 관련자들을 고발했습니다.
변호인단이 제출한 고발장에 의하여 검찰은 수사를 시작하였으나, 예상 밖으로 문귀동에 대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나아가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권양에 대한 악의적인 모함과 중상으로 가득 찬 '공안당국의 분석자료'라는 유인물을 배포하게 되자, 조 변호사는 즉각 이에 대처하여 변호인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회견 까지 자청하여 검찰의 수사결과의 허구성과 수사과정에서의 의혹을 낱낱이 밝히게 됩니다.
"권양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는 슬픔과 절망으로 왔으나, 이제 우리는 가슴 가득한 기쁨과 희망으로 권양의 승리에 대하여 증언하고자 합니다." 조 변호사는 권인숙에 대한 공문서위조 등 형사사건의 변론에서 이와 같이 변론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뛰어난 문장력을 가졌던 그는 한일회담 반대를 위해 처음으로 쓴 문장인 '선언문'을 작성한 바 있으며, '전태일 평전'에서 그의 필력을 알 수 있습니다.
조영래 자신은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전태일 평전'의 저자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조 변호사는 이 변론요지서를 통하여 부정한 권력을 준엄하게 고발하고 그에 온몸으로 맞선 권양의 고통과 희생을 모든 국민들의 아픔과 분노로 승화시켰으며, 결국 진실은 승리하고야 만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폐부 깊숙이 새겨 놓았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보고서 발간의 산파역을 하였습니다.
당시 대한변협의 사무실에도 국가안전기획부나 국군보안사령부 요원들이 상시로 출입하던 시절이라 그는 보고서조차 은밀히 쓰고 출간해야 했습니다. 보고서가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그는 보고서의 후기를 이렇게 고쳐쓴다. "우리의 인권보고서는 할 말을 잃었다. 다만 치떨리는 분노로 이렇게 외칠 따름이다. '박종철을 살려내라'고."
주요 시국사건을 같이 담당하던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상설조직인 정법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정법회의 탄생은 지금까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변론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변론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게 남들이 하지 못할 노력으로 이 땅에 봄을 오게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0년 12월 12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43세.(생년월일(출생일) 1947년 3월 26일, 당시 나이 43세)
사실 폐암 진단을 받기 전에도 조영래는 심한 골초여서 지인들조차 그의 사무실은 너구리굴이 따로 없었다고 회상할 정도라 이 흡연 습관이 폐암으로 이어진 듯 합니다.
묘소(무덤, 묘지)의 위치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모란공원에 있습니다.
이 곳은 민주화 운동가들의 묘소가 모여 있는 곳으로 전태일, 문익환의 묘지도 이 곳에 있습니다.
유고집으로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가 있다.
제27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다.
2020년 6월 10일, 제33주년 6월 항쟁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조영래 변호사 프로필]
1) 생년월일(출생일): 1947년 3월 26일
2) 고향(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3) 사망: 1990년 12월 12일 (향년 43세)
4) 본관: 함안 조씨
5) 학력: 서울수송초등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수석졸업 / 61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65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6) 배우자(아내, 부인): 이옥경(李玉卿),
7) 자녀: 아들 조일평(趙一平), 조무현(趙茂顯)
8) 조카 매드클라운, 조현철
권인숙 현재 근황 및 프로필
권인숙은 1989년 '노동인권회관'을 세우는 등 여전히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1992년 서울대로부터 특례재입학을 허용받아 1993학년도에 복학한 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럿거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를, 클라크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따내 2001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2년 후 명지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부설 연구소인 '울림'의 초대 소장을 지내며 2004년에는 군대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는 등, 권력과 폭력의 관계를 깊게 연구해왔습니다.
그리고 2017년 3월 8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 캠프에도 합류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에 임명되었습니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시민당에서 영입을 통해 비례3번을 받아 당선되어,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으로 21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1989년에 결혼해서 자녀는 딸이 있다고 합니다.
[권인숙 프로필]
1) 생년월일(출생일): 1964년 8월 28일
2) 나이: 60세
3) 고향(출생지): 강원도 원주시
4) 직업: 제 21대 국회의원
5) 거주지(사는곳):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문귀동 현재 근황
문귀동은 사건 전만 해도 경찰국장 표창 3번에 서장 표창 13번을 받은 '모범적인 경찰관'으로 알려져 있었고 결혼 후 자녀 1남 1녀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후에는 세인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은 데다 경찰직에서 퇴직금 없이 파면되었습니다.
1987년에 자신이 거주했던 29평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9천만 원을 빌려 구두공장 '보광상사'를 세워 운영했으나 경영능력 미숙과 7월 장마로 침수되어 7개월만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1988년 기소 전까지 먼 친척형이 운영하는 주택업체에서 소일했습니다.
1993년 만기출소 후 어머니와 형의 금전적 도움을 받으며 은둔생활을 했고, 9월 2일에는 같이 근무했던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부천시 심곡2동 조이너스빌딩 지하에 단란주점 '가빈'을 차렸으나 두 차례 변칙영업 혐의로 적발돼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다른 한편 1993년 11월에는 서울민사지법에서 국가가 제기한 구상권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후 국가에 배상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문귀동은 그 돈조차 내지 않은 채 1994년에는 전년도 7월 재판 당시 자신의 처형 앞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던 행적 때문에 강제집행면탈죄로 검거된 바 있습니다.
이후 단란주점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잠적했으며, 더 이상의 문귀동 행적과 근황은 알 수 없습니다.
꼬꼬무 70회 이야기 손님 게스트
이번 '꼬꼬무' 이야기 친구 게스트로는 작사가 김이나, 가수 치타, 개그맨 서경석이 출연했습니다.
김이나는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등장했다. 조영래 변호사의 글을 보고 감탄하던 그녀는 녹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다시 읽어 보며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무한 존경심과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치타가 등장했습니다.
등장부터 재치 있는 삼행시로 녹화장을 빵 터지게 한 그녀는 경찰의 악덕한 만행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입고 있던 자켓을 벗으며 열을 식혀야 했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는 서경석이 자리했습니다.
순도 100% 솔직한 답변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던 그는 조영래 변호사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뜨거운 눈물을 훔쳤습니다.
글로써 악과 맞서고 온 마음으로 약자의 편에 섰던, 슬프도록 처절했던 변호사의 이야기를 전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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