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흥남철수 작전 흥남부두 메러디스 빅토리호 기적 현봉학 성심당 81회 게스트 재방송

꼬꼬무 흥남철수 작전 흥남부두 메러디스 빅토리호 기적 
현봉학 성심당 81회 게스트 재방송

[글 포스팅 순서]

1. 푸른 눈의 선장과 김치 - 기적의 해상철수작전
2. 흥남부두로 향한 사람들
3. 생이별의 현장, 20만 명의 피란민
4.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사람들
5. 크리스마스의 기적
6. 70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우리 군인들
7. 거제도 도착 그 후
8. 기적을 되갚고자 하는 마음

9. 낙동강변 살인사건 꼬꼬무 장동익 최인철 재심, 보상금 경찰 진범은? 미제사건, 80회 게스트
10. 꼬꼬무 신호수 의문사 장흥공작 사건 동굴속 죽음의 비밀 자살 사건 79회 재방송 게스트
11. 꼬꼬무 대구 학교 폭력 사건 2011년 중학생 권승민 자살 가해자 담임 근황 78회 게스트

 

 

푸른 눈의 선장과 김치 - 기적의 해상철수작전

6월 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 시즌3, 시청률: 2.5%)' 81회에서는 '푸른 눈의 선장과 김치 - 기적의 해상철수작전'이라는 부제로 흥남 철수 작전의 그날을 추적했습니다.

이야기 친구 게스트로는 배우 김도현, 김용지, 가수 라이머가 출연했습니다.

흥남부두로 향한 사람들

때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흥남에 6살 인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인재네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동생 둘, 삼촌, 사촌들까지 북적거리는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더 북적거렸습니다.
김장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김장을 하고, 김장독을 마루 밑에 잘 넣어 뒀습니다.
그런데 김장이 끝나자마자, 인재 아버지가 "빨리 짐 싸라"면서 갑자기 급하게 이불이며 먹거리를 막 챙겼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두고, 여덟 명의 식구들이 집을 나섰습니다.

같은 시각, 함경남도 함흥 근처의 한 과수원.
 술래잡기를 하던 11살 정숙이와 6살 영숙이 자매가 신나게 술래잡기를 하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매의 집에서도 아버지가 "빨리 떠나야 한다! 시간이 없다!"며 보챘습니다.
급하게 당장 먹을 미숫가루와 옷가지만 챙겨 출발하려는데, 어머니가 급하게 방에 들어가서 재봉틀을 들고 나왔습니다.
정숙이와 영숙이한테 당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이 나오지만, 이건 꼭 가져가야 한대.
엄마가 솜씨가 있어요.
이것만 가져가면 어딜 가든지 먹고 산다는 거예요.
그때 재봉틀 갖고 있으면 진짜 부자야.
내가 맏이니까 수건에다 해서 올려놓고 '이것만 가져가면 먹고 살아.
이거 놓치면 안돼'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냥 들고 걸어 가야지.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임정숙(85세), 당시 11살

정숙이네도, 인재네도, 급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출발한지 얼마나 됐을까, 눈 앞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엔 인재한테 당시 이야기를 들어볼겠습니다.

"나오자마자 길이 모이니까, 우리집에서 나올 때는 저희만 나왔는데, 저쪽에 가니까 옆길에서 나오고, 또 옆길에서 나오고. 수백, 수천명이 가는데. 
이게 난리가 났구나. 심상치 않은 상황이더라고요."

-이인재(79세), 당시 6살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인재네는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시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열 식구가 집을 나섰습니다.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피란길에 오른 것입니다.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었습니다.
온 동네가, 아니 함경도 전체가 난리였습니다.
이 수많은 피란민들의 목적지는 흥남부두였습니다.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눈 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의 그 흥남부두입니다.

때는 1950년. 6.25전쟁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국군과 UN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승기를 잡았는데, 중공군이 밀려 내려오면서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입니다.
전세가 역전될 위기에, 미군과 중공군의 대규모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장진호 전투(1950.11.27~1950.12.11)가 일어났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과 중공군 제9병단이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 일대에서 벌인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미국과 중국의 자존심 대결이었습니다.
미국은 용맹함의 상징, 제1해병사단이 나섰는데 당시 미군의 병력은 총 3만명이었습니다.
반면 중공군은 총 12만명이었습니다.
1대 4로 싸운 셈입니다.
그때 상황은 73년 전, 이 전투에 참전한 분께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학생들 소집하는 바람에, 학교 가는 도중에 징집돼서 군인, 카투사가 됐습니다.
카투사 1기 입니다. 우리가 겁을 좀 냈었어요.
왜냐면, 우리는 아군이 부상당하면 먼저 아군을 구하려고 하는데, 중공군은 총을 맞으면 시체들 위로 넘어오는 거예요. 죽어도 말이죠. 중공군은 후퇴가 없었어요. 들어올 적에 말이죠."

-류영봉(92세), 당시 이등 중사/장진호 전투 참전

중공군은 '인해전술'(우세한 인력을 바탕으로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공격하는 전술)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이 전투의 더 큰 복병은 '추위'였습니다.
당시 장진호 일대 평균 기온은 영하 30도, 최저기온은 영하 45도였습니다.
사람도 무기도 차량도, 모든 게 얼어붙었습니다.

"군인들은요 거의 다 동상 걸린 거예요. 살았던 사람들도 말이죠. 
피를 흘리면 피가 응고돼서 얼어서 그대로 죽은 사람도 많고. 
들것에 들고 나오면 얼어붙어서, 앉아있는 걸 앉혀 놓으면 그대로 얼어버립니다."

-류영봉(92세), 당시 이등 중사/장진호 전투 참전

추위로 인한 사상자가, 전투로 인한 사상자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추운 전투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결국 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작전상 후퇴를 감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육로가 끊긴 것입니다.
중공군 인원이 너무 많으니, 사방이 중공군이었습니다.
퇴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흥남부두를 통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흥남철수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무려 10만명의 군 병력이 흥남부두로 이동했습니다.
피란민들도 흥남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피란민들, 북한에서 왔습니다.
승기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잡고 있는데, 왜 피란을 떠나는 걸까요?
국군과 UN군이 이 지역에 왔을 때, 환영하고 협조한 민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북한군이 점령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원자폭탄이 투하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트루먼, 원폭 투하 신중 검토 중. 아직 명령은 미정"
-1950.12.01 '워싱턴 포스트' 기사 중

이런 이유로, 대탈출이 시작된 것입니다.

 

 

생이별의 현장, 20만 명의 피란민

칼바람이 부는 12월.
인재네, 정숙이네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렇게 이동하며 가장 무서웠던 건, 추위도 배고픔도 아니었습니다.

"머리에 이고 손에 짐 들고 했는데 손 놓칠 수 있죠.
손 놓치면 그걸로 끝입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막 밀고 하니까."

-이인재(79세) 당시 6살

"생이별 하는 사람들 많아요. 
손을 놓쳐 가지고. 연속극에 나오는 거 거짓말이 아니야. 
진짜야. 그렇게 됐어. 
(안 잃어버리려고) 붙는 정도가 아니지. 묶다시피 했지."

-임정숙(85세), 당시 11살

인재네 가족이 힘겹게 길을 가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인재네 가족은 총 10명인데, 중간에 갑자기 12명이 됐습니다.
그 난리통에 아이들을 구해야 하니까 두 명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그냥 인재네 가족이 챙긴 것입니다.
험하고 정신 없는 피란길, 이런 식으로 가족과 헤어지는 경우는 정말 많았습니다.

"같이 피란 오다가 걸어오니까, 딸이 6살인가 먹었거든요. 
어떤 아저씨 같은 사람이 그래. 
'아이고 아가야, 힘들겠구나. 다리 아프지? 내가 좀 업어줄까?'
그러니까 딸이 좋아서 얼른 업히는 거예요.
아저씨가 업고, 난 따라가고, 한참 가다 보니까 그 사람이 없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런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런 생각하면 뭐해요. 소용 없는 건데.
그래도 부모니까 마음이. 내가 낳은 자식이고 그러니까 생각이 나…"

-오학연 씨, 2010년 인터뷰 中

'지금 여기서 뒤쳐지거나 헤어지면 큰일난다'라고 인재, 정숙이 영숙이 같은 어린 아이들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말도 못했습니다.
얼굴이 얼어 붓고 발이 퉁퉁 부어도, 아프다고 말도 못했습니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까지 가는 길은, 몸도 가슴도 모두 시렸습니다.

그렇게 두 가족은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흥남부두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탈 배를 구해야했습니다.
그런데 두 가족은 눈 앞에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래 수인지, 사람수인지 몰라요.
바닷가니까 모래사장이 있어야 하는데 전부가 사람이었으니까.
아마 그거는 헤아릴 수 없을걸.
내가 그때 어려서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야. 실황이 그랬어."

-임정숙(85세), 당시 11살

"눈 닿는 데까지 전부다 피란민, 동서남북 다 피란민으로 꽉 찼으니까요.
둘러보면 그냥 사람이 온 부두에 사람이 꽉 찼던 거죠."

-이인재(79세) 당시 6살

그렇게 흥남부두에 모인 사람들은 무려 20만명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전부 탈출 할 수 있을까요?

너무 춥고 배고픈데, 정숙이네도 인재네도 그저 항구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함포 사격 소리가 들렸습니다.
중공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미군 함정에서 포를 쏘고 있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피란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수없이 날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린 정숙이는 그걸 보며 불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전쟁의 고통, 아픔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니까 그만큼 순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피란민들이 유심히 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현봉학, 당시 미10군단 민사부 고문이었습니다.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한 의사였습니다.

그런 현 박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미군이 이 많은 피란민을 다 배에 태워줄까, 싶은 것입니다.
배를 못 타면 이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 당할 텐데, 근데 미군 상황을 보니, 피란민들을 챙길 분위기가 아니였습니다.
현 박사의 고향도 함경도였습니다.
이 피란민들을 놓고 가자니,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불가능한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을 책임지는, 미10군단의 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을 설득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알몬드 장군은 '투스타' 계급이었습니다.
이런 높은 사람이 일개 민간일을 만나주는 것도, 설령 만난다 해도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현 박사는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이름은 에드워드 포니 대령.
당시 미10군단 부참모장으로, 해상 상-이륙 작전 전문가였습니다.
현 박사는 포니 대령을 찾아가 피란민들을 배에 태워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포니 대령은 피란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포니 대령은 현 박사의 말을 듣고, 적극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포니 대령과 현 박사는 알몬드 장군을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현 박사는 "장군님, 이들은 진심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출하지 않으면 공산당에게 모두 죽임을 당할 겁니다"라며, 포니 대령은 "장군님,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가 뭐였습니까. 이 사람들, 버리고 갈 순 없습니다"라며.
그렇게 간절하게 설득하자, 알몬드 장군은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현재로선 군인들조차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피란민 가운데에는 인민군 스파이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전쟁 중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피란민을 탈출시킬 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철수해야 할 군인만 10만명이었습니다.
피란민은 20만명이고, 총 30만명인 것입니다.

미군의 주력 수송함은, LST(Landing Ship Tank)라 불리는 전차 상륙함인데, 한 대의 정원이 200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30만명을 태우려면 LST가 1500척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투입 가능한 LST는 100척도 안됐습니다.
물론 LST 말고 다른 배들도 있긴 하지만, 군수 물자도 실어야 하니 배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군 병력부터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용감이 싸웠던, 미 제1해병사단부터 배에 먼저 탔습니다.
그 뒤로도 속속 군인들의 철수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피란민은 이 상황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사람들

중공군은 이제 흥남부두에서 16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함흥까지 왔습니다.
점점 피란민들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피란민들 뒤에는 중공군이, 앞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남부두의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군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바다 저 멀리서, 뭔가 발견한 현 박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배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한국 해군 함선과 수송선들이 몰려왔습니다.
일단 한반도 주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배라는 배는 다 끌어모은 것입니다.

"알몬드 장군은 현봉학 박사의 강력한 요청에 마음을 돌리기 시작한 이후, 인도주의적인 이유로 피란민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구출한다는 것을 방침으로 정했다."

-알몬드 장군의 참모장이 작성한 지휘보고서

이렇게 지상 최대 규모의 구출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배에 타야 하는데, 여전히 배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해상 상-이륙 작전 전문가, 포니 대령이 나섰습니다.
군인과 민간인 30만명을 태우기 위해, 포니 대령은 치밀한 작전을 세웠습니다.

먼저, 배에 군수물자부터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을 탑승시켰습니다.
군용차 안, 군수품 위, 장갑차 밑, 틈 하나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테트리스 수준이었습니다.
배를 못 타면 죽음뿐이라는 생각으로, 승선 인원의 두배 세배 다섯배까지도 탔습니다.
배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꽉 채워넣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되니, 군수물자 일부를 포기했습니다.
다른 나라 국민들을 태우기 위해, 자신들의 군수물자를 포기했다? 이건 자칫 하면 나중에 군법에 걸릴 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모자랐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중공군이 코 앞까지 왔다는데, 우리 차례는 오기나 할 까하는 다들 걱정이었습니다.
12월 흥남부두에는 칼날 같은 겨울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 미군의 급한 연락을 받고 흥남부두로 오고 있는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배의 이름은,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 배는 상선으로, 주로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습니다.
부산에서 제트기 연료 1만톤을 내리고 있었는데, 급히 연락을 받고 부산에서 흥남부두로 온 것입니다.
이 배에는 내리지 못한 연료 300톤이 실려있는 채였습니다.

1950년 12월 20일, 포탄 소리 가득한 흥남 외항에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습니다.
미군 몇 명이 배에 오르더니,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군: 선장님은 군인들을 태우고 흥남함을 빠져나가도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북한 민간인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피란민들을 태울 수 있겠습니까?

선장: 우리 말고 피란민을 태울 배가 남아있습니까?

미군: 사실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이 배가 마지막 배들 중 하나입니다. 
선원들과 상의하고 결정해 주십시오.

이런 대화 끝에, 라루 선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저 피란민들,
우리가 구출하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태우겠습니다.

라루 선장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당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탔던 선원을 '꼬꼬무'가 직접 만났습니다.

"제 이름은 벌리 스미스이고 메러디스 빅터리호의 마지막 생존 선원입니다.
그런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죠.
부두는 수천, 수만 명의 피란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시 승무원들이 받은 느낌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 이 모든 사람을 다 태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같은 상선 사관들은 군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배에서는 선장이 신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선장의 지시대로 해야 하죠.
인원을 채우라고 하셨고, 서로가 서로를 믿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길이 138m, 폭 19m 크기의 큰 배입니다.
이 배의 정원은, 60명이야. 화물을 싣는 화물선이라, 승선 인원이 적은 것입니다.
라루 선장은 화물칸에 어떻게든 피란민을 태울 생각이었습니다.
라루 선장은 승선을 개시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만 명까지 태운 후 자신에게 보고하라 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항해일지를 보면, 12월 22일 저녁 9시 30분부터 승선이 시작됐습니다.
피란민들에게는 이게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줄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거기엔 인재, 정숙이네 가족도 있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이런 화물칸이 5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화물 크레인을 이용해, 나무 판자를 넣어 사람들이 설 수 있게 하고, 20명씩 태워서 화물칸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이 화물칸은 철판으로 나눌 수 있게 설계돼 있었습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습니다.
화물칸 안으로 누울 공간도 없이 사람들이 계속 밀려 들어왔습니다.
서로 기대 앉아서 가야했습니다.
화물칸이 다 채워지고, 갑판까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배에 오른 인재네, 정숙이네 가족은 이 기름투성이 바닥에 이불부터 깔았습니다.
생존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빛도, 환기도, 화장실도, 물도 없었습니다. 
데크를 닫으면 피란민들은 거대 철제 무덤과 같은 박스에 갇힌 상태가 되었습니다. 
12월 말이었으니까 이가 시리게 추웠습니다."

-벌리 스미스(92),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12월 23일 오전 11시 10분, 승선이 완료됐습니다.
무려 14시간이나 걸린 것입니다.
처음 목표로 했던 만명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14,000명을 태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승선을 마친 배의 모습입니다.

어린 인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성냥통 안의 성냥개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배에 14,000명이나 태우다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간절함이 이런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열악한 환경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배에는 제트기 연료 300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실수로 작은 불씨라도 생기면, 혹은 적들에게 공격이라도 당하면, 그대로 배는 불더미로 변할 수도 있었습니다.

12월 23일 오후 12시. 
이렇게 모두가 걱정하는 상황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820km의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목적지는 부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고 간 군수품은 적들이 무기로 쓰지 못하도록, 흥남부두를 폭파해 버렸습니다.

배 안 피란민들은 집을 떠나 흥남부두까지 며칠, 배 기다리느라 또 며칠, 끼니는 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해서. 
제가 울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할머니가 '인재야 왜 우니' 해서, '밥이 먹고 싶어요' 하니까.
 할머니도 우시고 할아버지도 우시고. 
옆집 어른들까지도 다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내가 말 한 마디를 잘못 해서…"

-이인재(79세) 당시 6살

배고픔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화물칸 천장에서 뭐가 막 떨어졌습니다.
오물이야. 화장실이 따로 없었기에 위 쪽 화물칸 사람들이 볼일을 보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배 구석구석에 오물이 계속 쌓여갔습니다.
상황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이 버텨야했습니다. 서
로에게 기대며 버티는 사람들.
이렇게 가던 배는,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승선 시작 40시간 만이었습니다.

이제 내리면 되는 줄 안 피란민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선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부산까지 오는 데도 힘들었거든요. 
원체 많이 실었기 때문에. 멀미하고, 먹는 것도 마땅치 않으니까 많이 고생했는데. 
'부산 왔다! 저기가 부산이다!' 그런 고함 소리를 들었는데, 한 사람도 못 내리니까. 
실망이 컸죠."

-임정숙(85세), 당시 11살

부산에 이미, 피란민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말 그대로, 부산이 완전 포화상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 사람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피란처를 찾아야했습니다.
배는 다시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부산에서 거제도까지는 80km를 더 가야했습니다.

배 안은 불안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바로 그때, 피란민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갑판 쪽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원들이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여자를 업고 의무 부속실로 옮겼습니다.
산모의 출산이 시작된 것입니다.
"응애!" 하며 시퍼런 바다 한가운데 배에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여기서 끝이 아니였습니다.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화물칸에서도 아기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저 쪽에서도 또 아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난리 속에서 무려 5명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다섯 아기들. 
탯줄 자를 가위가 없어서 이로 탯줄을 끊고, 주위 사람들이 속치마를 뜯어서 아기를 닦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산파가 되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태어난 아기들을 보며, 미국 선원들이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미국 선언들은 '김치'가 한국을 상징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름에 '김치'를 붙였습니다.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이 아기들.
'꼬꼬무'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1호'라 명명된, 손양영 입니다. 
크리스마스 기프트 미라클 베이비라고, 선원들이 '닉네임을 하나씩 지어줘야 되겠다' 그래서 한국을 가장 상징하는 김치로 지었다고 그래요. 

출산을 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거고, 산모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고, 아이가 나오다가 잘못될 수도 있고, 근데 이게 무사하게 다 출생이 된 거 아닙니까. 
진짜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있다."

-손양영 씨, 메러디스 빅토리호서 출생

"전 마지막 김치 5호, 이경필 이라 합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김치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이렇게 정했대요.
 애가 태어나니까 주변에서 둘러싸서 공간을 확보해준 것 같더라고요. 
아기들이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봐야죠."

-이경필 씨, 메러디스 빅토리호서 출생

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14,000명의 피란민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한 것입니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습니다.
승선할 때처럼 하선할 때도 질서를 잘 지켜서 한사람 한사람 내렸습니다.
당시 땅에 내리며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선원들이 그러더라고요.
배가 너무 조용해서 문을 열면서 '다 죽었나 보다' 하고 열었는데 다 살아있는 거예요.
진짜 '살았다' 그랬어요.
'무사히 땅에 내렸다' 그렇게 외친 사람들도 있었고요."

-이인재(79세) 당시 6살

"선원들이 침착했고, 피란민들도 정말 환상적으로 대처했습니다. 
거제도에 내렸을 때, 피란민들이 웃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그 웃는 모습이 충분하게 감사의 표시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아주 자랑스럽고 이 작전에 참여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그렇게 탈출한 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벌리 스미스(92),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70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우리 군인들

이렇게 흥남부두에서 나온 피란민들은 모두 10만명이었습니다.
군대가 무사히 철수하는 것도 불가능할거라 생각했는데, 미군, 한국군, 그리고 피란민 10만명까지 철수한 것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단일 선박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정숙이와 인제네 가족, 미라클 베이비들도 모두 무사했습니다.
그 10만명 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님도 계셨다고 합니다.

"그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란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2017년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 기념사 중

그런데 이 모든 게 다 천운이고 기적이었을까요?
흥남철수작전 성공 뒤엔, 큰 희생들이 있었습니다.
용맹함의 상징, 최정예 미 제1해병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로 철수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절했다고합니다.

전우들을 남겨두고 자신들만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병은 철수하지 않는다, 다른 방향으로 진격할 뿐.
우린 후방의 적을 격멸하면서 가겠다'는 의지로, 미 제1해병사단은 1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후퇴했습니다.
그 결정으로 중공군의 남하를 최소 2주 이상 늦춘 것입니다. 이
들이 벌어준 그 2주가 아니었다면, 피란민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 장진호 전투에 미군과 UN군 사상자가 7000여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 카투사 장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용감하게 싸웠던 분들이, 70년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오셨습니다.
지난 202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국군 유해 147구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7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선배님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친구에게. 허락하신다면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고 싶습니다. 
지옥 같은 전장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누구보다도 더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당신이 지켜낸 땅 위에서 전 오늘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친구여,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단 한순간도 당신을 잊지 않았떤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2020년 6월 25일, 6.25전쟁 70주년 행사 中

이날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류영봉 선생님은 대표로 복귀 신고를 했습니다.

충성!
이등 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 25일을 기하여
조국으로 복귀 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내가 미안하고 말이죠. 너는 전사했는데 나는 아직 살고 있으니까 말이죠.
피 흘려가며 같이 싸운 동료들이 보고 싶고.
이렇게 발달된 대한민국에 아직 혼자 살고 있으니까, 미안한 감도 있고.
기쁜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반으로 말이죠.
평생 내가 죽어서도 못 잊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죠.
내가 건강할 때까지 계속 봉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류영봉(92세), 당시 이등 중사/장진호 전투 참전

 

 

거제도 도착 그 후

거제도에 무사히 왔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인재네는 하룻밤만 재워달라면서 무작정 거제도 주민들의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허락이고 뭐고 소통이 안 됐습니다.
함경도 말과 거제도 말이 너무 달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참 손짓 발짓 하다가, 집 주인이 한쪽 방을 가리켰습니다.
다행히 거기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이라고 무슨 수가 생기나.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인재네는 무려 6개월을 이 집에 머물렀습니다.
집주인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합니다.

"거제도 덕분에 살았던 거죠. 
거제도 사람들이 우릴 도와준 거고. 
(거제도는) 정든 고향입니다. 
저희들의…"

-이인재, 흥남에서 온 피란민

많은 피란민들이 거제도 주민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가슴 아픈 기억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우리집 뿐만이 아니라, 옆집, 또 옆집에 애들이 죽어나가는 건 다반사였으니까요.
 제 동생들, 4살, 1살짜리는 젖을 먹어야 하는데. 
시름시름 하다가 그냥… 묻으러 가는데 동네 아저씨 둘 불러서 맡겼어요.
가서 묻으라고.
그 아저씨가 가마니에 우리 여동생을… 이렇게 싸가지고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잠깐만 있으라고.
그 누비이불이라고 있는 얇은 이불, 그 이불에 싸가지고 주면서 이 누비이불에 싸가지고 묻어달라고.
둘이 저렇게 죽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는 게 눈물로 세수하는 거예요."

-이인재, 흥남에서 온 피란민

그리고 '김치 1호' 양영 씨에게도 잊지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자식 둘을 북에 두고 남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부모님이 남쪽으로 내려오실 때, 남쪽에 내려온 거는 저희 어머니, 아버지, 저, 세 사람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절대로 이북 이야기, 어머니 앞에서는 안하세요.하시면 자꾸 우시니까.

아버지가 바깥에서 우시는 걸 많이 봤어요.
내가 먼발치에서 오면, 담배를 피우시다 우시더라도 '왔느냐, 왜 왔느냐, 바깥 공기가 찬데 들어가라', 근데 아버지 눈가에 보면 눈물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눈물을 싹 닦고 내색을 안 해.
걱정하지 말아라. 그렇게 항상 어머니를 위로해주는 거예요."

-손양영, 당시 피란민

아버지가 신신당부하며 주셨던 것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글씨가 쓰인, 양영 씨의 백일 사진과 메모입니다.
"이걸 꼭 간직하고 있으라. 북에 두고 온 네 형이랑 누나를 만나면 보여줘라. 이게 네가 동생이라는 증거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양영 씨는 그 때부터 메모와 사진을 늘 품에 품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가슴 찢어지는 아픈 이별을 겪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피란민들은 더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공부도 진짜 열심히들 하셨다고합니다.
김치 1호 양영 씨는 대학입시, 그리고 그 아버지는 한의사 국가시험에 도전하셨습니다.

"밤에는 공부를 하고, 낮에는 돈을 장만해야 되니까. 
낮에는 또 오만 잡일을 하시면서 일해요. 
저는 뭐 젊으니까 같이 공부를 하고 밤낮을 새도 괜찮지만, 아버님은 무리를 하시니까 코피를 많이 흘리시더라고. 아버지는 계속 공부를 하셨어요."

-손양영, 당시 피란민

그 노력 끝에 두 분 다 합격했습니다.
양영 씨는 연세대에, 아버지는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대가족이 함께 내려온 인재네는 일자리를 찾아 이사를 갔습니다.
6개월이나 방을 내준 집주인 아주머니가 10리 밖까지 따라와서 모두 잘 살라며, 인재한테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꼭 놀러오라고 말했습니다. 인재도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지질학과에 수석 합격했습니다.

거제도를 떠난 지 18년 후, 인재는 도움을 줬던 아주머니네를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아주머니느 그 곳에 계셨고, 인재를 만난 아주머니는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인재는 항공 관련 사업가가 됐습니다.
'김치 1호' 양영 씨는 무역업을 하고, '김치 5호' 경필 씨는 거제도 수의사가 됐습니다.
그럼 정숙이, 영숙이 자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기적을 되갚고자 하는 마음

정숙이네 가족은 대전으로 이사를 갔고,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찐빵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팥 삶아서 물에 쪄 놓으면, 추울 때고 6.25야.
또 역전 광장이야.
거기서 김이 무럭무럭 나면 '그게 뭐요?' 그렇게 되는 거야.
그래서 그거 하나씩 먹으면 맛있거든.
그러니까 팥소 넣고 팔다가, 야채도 넣고 팔다가.
뜨끈뜨끈하니까 잘 팔려. 그
렇게 기름 갖다가 도넛도 튀겨.
그래서 제과점이 돼버린 거야."

-임정숙, 당시 피란민

정숙이네는 작은 제과점을 차렸습니다.
이 곳이 바로, 지금 '대전의 상징'이라 불리는 전국구 인기 빵집, 튀김소보로 빵으로 유명한 '성심당'입니다.
흥남철수작전이 아니었다면,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이 없었다면, 우린 성심당의 빵을 못 먹었을 것입니다.

창업주인 정숙이 영숙이 아버지는 배 위에서 "살아 남는다면, 어려운 사람들 도우면서 살아야지"라고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창업주 아버지 뜻을 이어, 지금도 성심당은 매달 6천만원 상당의 빵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짐은, 정숙이네 가족만 한 게 아닙니다.
많은 피란민들이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흥남철수작전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들도,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김치 1호와 5호가 최근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난 3월. 
오랜만에 만난 김치 형제들은 흥남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내려온 사장님이 차린 식당에서 함흥냉면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베러디스 빅토리호의 마지막 생존 선원, 벌리 스미스 씨에게 감사 영상편지를 남겼습니다.

"3~4년 전에 거제도 오셨을 때 그 때 뵙고 오늘 처음 영상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가 창궐해서 다들 걱정했는데, 건강은 잘 유지하고 계신지요."
-손양영, 당시 피란민

"건강하십시오. 
거제도 오셔서 다시 우리 한 번 모이기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이경필, 당시 피란민

벌리 스미스 씨도 답장을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김치 친구들. 마이애미에서 여러분 메시지를 받으니 기쁘네요. 
두 사람 다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둘에게 따뜻한 포옹을 보냅니다. 
곧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요."
-벌리 스미스(92),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흥남철수작전 이후 73년.
무엇보다 가장 많이 바뀐 곳은, 대한민국입니다.
도움을 받았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그리고 71년만에 아주 소중한 보은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꼬꼬무'는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 벤포니 씨를 만났습니다.
벤포니 씨는 한국에서 공부를 해서 한국어를 잘 합니다.
포니 대령과 한국의 인연은 대를 이어 증손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왜 한국을 사랑했는지 궁금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회가 생겨서 한국에 왔습니다. 
2021년에 우리 새어머니께서 암에 걸렸습니다. 
그 때 한국 국가보훈처를 통해 의료지원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큰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신기 거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흥남에서 피란민들 구했는데, 70년 후에 한국은 우리 가족한테 고마움을 전해줬습니다. 우리 가족하고 한국의 인연은 계속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공세로 수도 카불이 함락됐을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주민들은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아이들만이라도 탈출시키기 위한 부모의 필사적인 모습들이 전세계를 울렸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이들을 위해 나섰습니다.
군인을 파견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구출해 한국으로 이송했습니다.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위험에 처한 외국인을 구출한 첫 사례라고 합니다.
이 작전은 '미라클'이라 불렸습니다.
미라클 베이비가 태어난 이후 70여년이 흘러, 우리가 그 미라클 작전을 또 성공시킨 것입니다.

이 미라클 작전을 보고 흥남철수작전 때 내려온 분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자신도 경험한 일이라 안타까워 우셨고, 또 이젠 우리가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게 벅차서 우셨다고합니다.

미라클, 기적이란 뭘까요?
10만여명의 생명을 구했던 그 때 그들의 선택처럼, 모든 기적 뒤에는 올바른 선택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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