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사랑의 집 장목사 꼬꼬무 냉동 시신과 천사 아버지 비밀 근황
129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글 포스팅 순서]
1. 천사 아버지의 비밀
2. 원주 사랑의 집?
3. 원주 사랑의 집 장목사 실상
4. 드러난 진상
5. 궁금한 이야기 Y 방송이후 장목사 근황
6. 꼬꼬무 시즌3, 129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7. 516 군사정변 쿠데타 5.16 혁명? 꼬꼬무 박정희 장도영 128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8. 꼬꼬무 서준이가 사라졌다 울산 계모 살인 사건 범인 오선미 형량 근황 127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9.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 꼬꼬무 위치 원인 사장 사망 생존자 현재 126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10. 포천 농약 연쇄살인 사건 꼬꼬무 범인 형량 가족 딸 아들 근황 125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11. 선감학원 사건 원장 꼬꼬무 안산 선감도 위치 학원의 비밀 124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12. 꼬꼬무 엄창록 킹메이커 영화 실화 마타도어 뜻 선거판의 나이트 123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13. 홍인규 부인 와이프 아내 프로필 유튜브 개그맨 골프 수입 나이 아들 키 쇼파
천사 아버지의 비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시즌3에서 '천사 아버지'의 비밀을 조명했습니다.
'꼬꼬무'는 '냉동 시신과 비밀의 집' 편으로, '목'숨 바쳐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천사 아버지 장목사의 잔혹한 두 얼굴을 이야기했습니다.
원주의 한 대학병원에는 오랜 세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습니다.
10년째 시신 안치실에 방치된 한 여인에 관한 비밀이었습니다.
사망한 사람의 장례를 치르지 않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공교롭게 이런 상황은 인근의 또 다른 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병원에 있는 남성 시신의 경우, 무려 12년 동안 차가운 냉동고 안에서 지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냉동고 속 두 시신이 알고 보니 남매였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이유가 보호자인 아버지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도대체 아버지 장 씨는 왜 자녀들의 장례를 치러주지 않는 것일까요?
병원 측의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선 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장 씨는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의료사고로 제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호자 동의 없이 진행된 수술에서 장 씨의 아들 장성광 씨가 사망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장 씨는 시신에 남았을지 모를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녀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장 씨.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장 씨는 21명의 장애아들을 입양해 보살피는 유명 인사였습니다.
'목'숨 바쳐 자녀들을 '사'랑해서 자신을 '목사'라고 부른다는 그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집에 '사랑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행여 장 씨는 친자식이 태어나면 자녀들에게 소홀해질까 봐 정관수술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헌신은 각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그 결과 '천사 아버지'라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냉동 시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 씨의 집을 찾아간 제작진은 이곳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담당PD는 "이상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선 나지 않는 냄새가 나더라"고 말했습니다.
좁은 움막에서 나는 코를 찌르는 악취는 열악한 생활 환경을 가늠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자녀들은 모두 삭발한 상태였고, 몸에는 장애인이라는 문구와 장 씨의 연락처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의료사고의 진실을 파헤치던 제작진은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취재에서도 충격적인 증언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40년 동안 한 번도 행정당국의 조사를 받지 않았던 '사랑의 집'의 실체는 2012년 방송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장 씨의 만행에 경악했습니다.
장 씨는 21명의 아이들을 거두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자녀들은 서류상의 숫자와 전혀 달랐습니다.
오랜 세월 아버지 장 씨가 숨겨온 비밀은 무엇이고,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장 씨의 사라진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로부터 10년 뒤,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갈 무렵 장 씨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세상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장 씨의 근황과 관련된 또 하나의 소식이 '꼬꼬무' 제작진에게 전해졌다고 합니다.
원주 사랑의 집?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에 위치한 '하나님의 복지법인 사랑의 집(이하 사랑의 집)' 대표 장진남씨는 1964년부터 장애인 23명을 입양하여 친자식처럼 돌보고 장애인 복지에 힘써온 '천사 아버지' 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원래 장목사는 1940년 평안북도 신의주시 출신 실향민으로, 어릴 적에 월남했다고 합니다.
1964년, 해병대 제대 이후 대구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한 장애아를 데려다가 기른 것을 시작으로 미혼 상태로 정관수술을 한 뒤 점차 장애아를 한두 명씩 모아다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경부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현 강서구)방화1동 249-45 공터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터를 잡다가 1973년부터 어머니가 사들인 내발산동 419-1번지의 야산 인근에 있는 폐가를 개조하여 정착했습니다.
그뒤 장애아를 돌보면서 주로 미국 등지로 몇 차례 부흥회를 다니거나 흑염소를 키워 육골즙을 만드는 등 생계 활동을 해오다가 1979년 이후 수 차례 언론을 타면서 유명세가 더해졌고 사랑의 집을 후원하는 후원자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났습니다.심지어 1988년에 자서전 <주님의 손처럼 되고 싶어라>도 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경부터 사랑의 집 일대 토지가 서울 남부지역 개발 붐으로 땅값이 올라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고 진남씨도 사랑의 집 증축을 위해 땅을 측량하다가 사랑의 집 인근 땅에 남의 건물이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갑자기 나타난 땅 주인들과 갈등을 겪다 땅 주인들이 경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장씨는 1986년에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에 의해 연행되어 신길동 분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 뒤 땅 주인들에 의해 온갖 방해와 협박을 당했습니다.
1989년에는 전술한 자서전에 땅 주인들 이름을 실명으로 기재하는 바람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에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되어 돌아와 보니 내발산동 사랑의 집은 이미 1989년 10월 6일부로 강서구청의 행정대집행에 의해 철거되었고(사유는 불법건축물 판정과 심신장애자복지법 위반), 장애인들은 당시 서울시립아동병원이나 장애인 시설 등으로 보내졌다습니.
장목사는 이들을 돌려받으려 했지만 병원측에서 거액의 치료비 및 식비 등을 내야만 한다고 하자 결국 주머니 사정상 5명의 장애인들을 겨우 찾아 지리산, 월악산 등지를 떠돌면서 약초를 캐며 원시인과 다름없이 유랑생활을 하다가 1996년경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 산골에 터를 잡으며 2년 뒤에 새 집이 지어지자 이곳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원주 사랑의 집 장목사 실상
2012년 후술할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진남씨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애시당초 장목사 본인부터가 직함만 달고 있을 뿐인 가짜 목사였으며, 그가 운영한 해당 시설도 인가받지 않은 미신고시설이었습니다.
그는 사망한 원생 두 명의 시체를 10여 년이 넘도록 영안실 냉동고에 방치한 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으며 죽은 사람들의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부당하게 장애인 수당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장씨 측의 주장에 의하면 이 두 원생이 병원 측의 의료사고로 인해 죽었다며 시신을 회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집에 있던 다른 원생들은 하나같이 기본적인 끼니 조차도 챙기지 못한 듯한 학대의 흔적이 역력한 데다 장씨는 이들을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밭에서 강제로 노동을 시키고 심지어 삭발을 시키고 몸에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하는 등 원생들에게 보인 행동은 천사(賤邪, 천박하고 사악한) 아버지 그 자체였습니다.
심지어 폭행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장애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찍어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장씨 측은 해당 사진이 1998년 당시 귀래면사무소 공익요원 측이 시설 내의 간이 변소를 무허가 건물이라고 하여 철거했는데, 그 원생이 철거 잔해에 걸려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곳의 장애인들은 모두 친부모가 있음에도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 가족이 제대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에 맡겨진 사람들이었는데, 장씨는 이들을 입양해서 친권자가 된 뒤 엄청난 뒷돈을 챙겨왔습니다.
장씨의 호적에는 21명이 올라와 있었지만, 정작 실제 남아있는 자녀 수는 고작 4명에 불과했습니다.
1989년에 내발산동 사랑의 집이 강제철거되자 동거했던 장애인들은 서울시립아동병원을 거쳐 각지의 장애인 시설로 뿔뿔이 흩어졌고, 이후 장씨가 5명을 겨우 찾아냈으나 그 중 두 명은 2000, 2002년에 각각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2012년 당시에 거주하던 4명 중 나머지 한 명은 2000년에 다른 시설에서 되찾아 데려온 것입니다.
거기에 4명을 21명으로 불린 수법도 가관인데 사진을 조작해서 사람 수를 늘린 것도 모자라 한 명의 주민등록번호를 2중으로 등록해 1인 2역을 시키는 등 온갖 치졸한 수법을 동원했으며, 심지어 여성 원생을 입양한 후 호적에 아들로 등록하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취재 당시 방송에 공개된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면 그가 주장하는 원생 21명의 입양날짜와 등록 날짜가 하나같이 똑같았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명을 등록하는 과정에 성별조차 확인하지 않고 대충 올렸거나 당시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던 남아 선호 사상을 이용해 "남성 장애인"으로 둔갑시키는 방법으로 후원자들의 동정을 사서 수입을 올리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21명이라는 '양자'를 유지해서 기초생활수급비 및 장애인 수당 등 국가 보조금만 무려 2억 원에 후원금만 5억 원 상당의 어마어마한 액수를 챙긴 것입니다.
내발산동 시절 장씨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방송에 의해서 양말부터 억대의 돈까지 들어왔다고 합니다.
매스컴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드러난 진상
결국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제보를 받아 취재를 시작했고, 이 방송을 통해 사랑의 집의 실상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르포는 2012년 6월에 방송되어 큰 파장을 불렀습니다.
방송을 본 많은 시청자들이 공분했고, 일부 시청자들은 장애인 인권 유린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연상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사회복지 측면에서도 불과 1년 전인 2011년 발생한 원주 자신보육원 사건에 이어 같은 원주 지역에서 터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취재에서는 장애인 가족들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 단체들이 앞장서서 사랑의 집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씨 부부는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오히려 취재진을 '채증'하겠다며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어댔고 시종일관 고성과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심지어 사랑의 집에 있던 장애인들의 친부모와 장애인 단체가 가져온 유전자 검사결과 등 각종 관련 서류마저 '이거 다 가짜다'라면서 그들 앞에서 서류를 갈기갈기 찢는 등 실로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여 공분을 샀습니다.
게다가 장씨는 취재진과 경찰, 검찰, SBS 제작진, 장애인 단체들, 자신을 비판하는 일부 블로거들에까지 주거침입, 납치, 유괴 등 온갖 혐의를 뒤집어씌워 고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술 더 떠 장씨의 아내는 경찰과 취재진, 장애인 단체 등을 향해 '폭도'를 비롯해 '강도', '악마' 운운하며 온갖 폭언과 욕설, 저주를 서슴치 않는 등 추악한 본색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또한, 보호자들이 원생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몰래 데리고 나와 병원으로 옮겼는데 이 인간말종은 기어코 찾아와 원생을 데려가겠다며 발악을 했습니다. 다행히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친부모 등 보호자들 편이라 속여서 돌려보내버렸고 치료를 받았는데 이 중 놀라운 사실은 원생 중 한 명이 말을 잘 못 알아 듣길래 청각 장애인인 줄 알았다가 알고 보니 귀 안에 귀지가 많이 있어서 그걸 다 하루 내내 파내야 할 정도로 원생들의 위생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경찰과 원주시청 당국 역시 태도도 소극적이었는데, 막상 사랑의 집 앞에 경찰이 출동하자 "체포영장이 나올 때까지 못 들어간다."고 소극적으로 일관했습니다.
사랑의 집에서 장애인 4명이 무사히 구출되었음에도 "살아만 있어주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또 시 당국 역시 사랑의 집이 시설이 아닌 '가정'으로 취급돼 있는 터라 그 동안 별 제재를 못했습니다.
다만 경찰은 초기부터 사랑의 집 사건에 대해 증거가 확보되는 대로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제작진, 장애인 인권단체, 친부모 등 보호자들과 함께 원주경찰서 청사 내부에서 원생들을 몰래 탈출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 차례 더 방송이 나간 다음, 장장 6개월 동안의 진실 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애인 단체와 인권단체가 장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급기야 많은 시민들도 법원과 공공 기관에 모여서 대규모 집회를 열 정도로 조직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힘입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SBS의 취재 내용을 증거로 채택하여 조사를 시작했으며 검찰도 사랑의 집을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씨가 이런 사태를 대비해 미리 손을 쓴 것인지 마당에서는 각종 서류 등을 불태운 흔적이 발견되었고 개 뼈 조각도 발견되었습니다.
궁금한 이야기 Y 방송이후 장목사 근황
2012년 12월 장씨는 구속되었지만 췌장암을 핑계로 진술을 거부하는 데다 "배정훈(당시 궁금한 이야기 Y 담당 PD)이 3억 원을 달라는데 안 줘서 그러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비리에 연루된 높으신 분들이라도 된 양 휠체어까지 타고 나타나는 패기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사랑의 집 측에서는 기존 누리집을 긴급 개편하여 '방송사가 조작했다' 등을 주장하며 필사적으로 장씨를 옹호하며 무죄를 주장해 왔으나 대중들은 당연히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습니다.
보다못한 한 누리꾼이 방송을 보고 2013년 2월 8일 다음 아고라에 서명을 올렸는데, 서명운동 제목이 장애인 21명을 입양 학대한 희대의 사기꾼을 역사가 심판해야 한다라는 것에서 누리꾼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사랑의 집에 있던 원생들은 다른 장애인 시설로 옮겨가 생활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원생 중 한 명인 장성아 씨는 사랑의 집을 나온 이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고 병세가 점점 악화된 끝에 결국 2013년 1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장씨는 여전히 아내와 지인들을 동원해 자식들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13년 2월에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장씨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법원에 특별변호인까지 신청했고 보석 신청도 계획했다고 합니다.
결국 춘천지법 원주지원 1심 재판부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으나 일부 진술은 장애인의 지적 능력을 감안해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각했으며 결국 형량은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책위는 판결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면서 항소했지만, 2014년 1월 8일 춘천지법 항소심, 5월 16일 대법원도 같은 판결(2014도1188)을 내렸습니다.
내발산동 시절 15살 때 5번만에 탈출한 원생이 수십 년 세월 뒤에 부모와 재회 후 이어지는 증언으로 시작되는 후속 프로가 2013년 4월 12일에 방영되었습니다.
그 증언에 따르면 더 충격적인 진실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장씨 부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탈출을 4번이나 시도했다가 팔의 문신 탓에 장씨에게 붙잡혀 욕조에 강제로 빠지며 짓밟히는 방법의 물고문을 당하고, 손발톱을 뽑고 눈을 바늘로 파내는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합니다.
가히 고문 수준의 학대를 받은 것입니다.
2013년 7월 26일에 24년 전 내발산동 사랑의 집 강제철거 당시 다른 원생들과 시설로 같이 옮겨졌던 한 원생이 경기도 이천의 한 시설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리고 2013년 9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정도로 엽기적인 홍천 실로암 연못의 집 사건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고발되었습니다.
2014년 1월 23일에는 그 동안 병원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었던 원생 장성희 씨의 장례가 12년만에 치러지고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7월 2일 서울가정법원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사실상 장씨의 친자가 아님을 인정하였습니다. 장씨는 이에 항소했으나 2015년 5월 14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장씨의 상고를 기각하여 친생자관계부존재를 확정했습니다.
장 씨의 근황은 그 뒤에도 수년간 여러 차례 언론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청와대 등지 각계 단체들에 억울함을 주장하는 진정서를 보내고, 2020년에는 배 PD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자신은 무고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씨는 2021년에 법원에 재심청구까지 한 상태입니다.
꼬꼬무 시즌3, 129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편에는 가수 인순이, 배우 이준, 씨엔블루 이정신이 이야기 친구 게스트로 나섰습니다.
인순이는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나타났습니다.
대선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장성규에게 '꼬꼬무'의 콘셉트에 맞게 반말을 쓰라며 분위기를 풀어준 인순이는 금세 이야기에 몰입했고, 녹화가 끝날 무렵엔 "아파도 국민이잖아"라는 말을 남기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SBS 드라마 '7인의 부활'에서 복수를 이끄는 해결사로 활약한 이준은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최초 등장했습니다.
배우답게 풍부한 감정으로 공감을 이어가던 그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반전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는 '7인의 부활'에서 악역 장인으로 거듭난 이정신입니다.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이야기를 듣던 그도 마침내 드러난 장 씨의 이중적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문을 막히게 한 장 씨의 기막힌 실체가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에 분노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역대급 반응을 보인 이야기 친구들과 함께한 '꼬꼬무'의 '냉동 시신과 비밀의 집' 편에서 이야기 친구 게스트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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