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 4불가론, 이성계 최영의 요동정벌의 진실은?
우왕과 최영은 요동 공격군을 편성하여 출병을 강행하였다(4월). 무리하고 졸속적으로 서두르는 측면이 있었다.
총병력은 3만 8천여 명으로 좌, 우군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조민수의 좌군은 서경과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계림, 안동 등 넓은 지역에서 병력을 차출한 반면 이성계의 우군은 안주도, 동북면, 강원도의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그러한 만큼 이성계는 많은 휘하 친병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요동 공격은 이성계 휘하의 강력한 사병을 합법적으로 제거하려는 최영의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명과의 관계 회복에 노력한 정몽주, 정도전 등 문신 세력들에게 정치적 타격을 가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아는 이성계는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을 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등의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 공격의 부당성을 호소하였으나 우왕과 최영은 묵살하였다.
이성계의 4불가론
최영과 우왕은 원명 교체기에 힘의 공백 지대로 남겨진 요동지방을 수복하여 민족의 숙원을 푼다는 목적과 혁명의 야심을 가진 이성계 세력을 대외 원정에 소모시킨다는 정략으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다.
처음부터 요동 공격을 반대한 이성계는 이른바 4불가론을 제시한다.
以小逆大(이소역대), 소국이 대국을 거역함은 불가하다
夏月發兵(하월발병),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불가하다
擧國遠征(거국원정) 倭乘其虛(왜승기허), 거국적으로 원정할 경우 왜구의 침입 우려가 있다
時方署雨(시방서우) 弩弓解膠(노궁해익) 大軍疾疫(대군질역), 시기는 장마철이라 활이 녹고 대군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성계를 지지한 신진 사대부의 주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성계는 선대가 원에 협력한 사실이 약점으로 작용했기에 명과의 우호적인 외교관계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 4대 불가론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명明은 신생국이고 주변국 공격으로 혼란 상태라 요동에 쓸 여력이 없다. 이는 사대주의, 역모의 합리화일 뿐이다.
둘째 이미 농번기 때 군량을 확보했으므로 초기의 우호적인 날씨와 상황을 십분 활용해 요동을 급습해야 한다.
셋째 왜구의 후방 침입은 최영이 대비하고 있다.
넷째 장수가 실제 발생할지 모르는 전염병을 이유로 철군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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