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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꼬꼬무 시즌3, 꼬꼬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건 정리/범인 기관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by 충격대예언 2022. 5. 6.

꼬꼬무 시즌3, 꼬꼬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건 정리/ 범인 기관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글 포스팅 순서]

1. 한 남자의 수상한 행동, 불길이 치솟은 지하철
2. 찾기 어려운 탈출구
3. 1079호 전동차 반대편에서 불어온 바람
4. 순식간에 덮친 화마, 그저 기다린 승객들
5. 애타는 실종자 가족들
6. 350명의 사상자, 탈출조차 못한 승객들
7. 사건 발생 후 지하철 공사의 은폐 의혹
8. 1080호 사망자, 인재가 만든 대형참사
9. 대형 참사의 진짜 원흉은?
10. 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절대 잊으면 안 될 그날

11. 꼬꼬무 시즌3 최은희 신상옥 납치 탈출 사건, 26회 톱스타와 비밀 테이프, 재방송 시간
12. 군함도 하시마섬 시즌3 사도광산 강제징용 위치 유네스코 등재 역사 왜곡
13. 장항 수심원 사건 외딴섬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4.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1999년 화재 사건의 전말, 꼬꼬무 시즌3
15.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시즌3 재방송 다시보기 시간

5월 5일 목요일 10시 30분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꼬꼬무 시즌3, 시청률: 4.3%) 에서는 '전하지 못한 목소리: 지화(火)철 1080호 미스터리' 라는 제목으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그날 이야기를 조명했습니다.

 

한 남자의 수상한 행동, 불길이 치솟은 지하철


2003년 2월 18일 전융남 씨는 우체국에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 우체국으로 가기 위해서 대구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그의 맞은편에 한 남성이 체육복 차림으로 가방을 가슴에 안고있고, 그의 옆에는 하얀색 물통이 있었습니다.
전융남 씨는 물통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산에 갔다가 온 남성이 약수를 떠왔다고.
그런데 맞은 편 이 남자는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만지작대더니 주머니 밖으로 꺼냈다고 합니다.
그가 꺼낸것은 라이타. 


수상한 남자는 지하철 안에서 라이터를 켜려고 했고, 이를 본 전 씨는 그에게 소리를 쳐서 그를 제지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탄 1079호 열차가 대구 중앙로역에 들어선 순간 그 수상한 남자의 바지에 불이 났습니다.
이에 전 씨를 비롯한 사람들은 다급하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그의 바지 불을 껐습니다.

 

찾기 어려운 탈출구


그러나 남자의 바지에서 번져 나간 불은 순식간에 지하철 좌석에 옮겨 붙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하고 1분 만에 첫 신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수상한 남성이 들고 있던 하얀색 통의 액체는 휘발유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불이 번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이에 승객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1079호에 타고 있던 승객들의 탈출은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대구 중앙로역의 구조 때문이었습니다.
지하 3층에 있는 승강장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하 2층 개찰구를 지나 지하 1층 건물들을 지나고 해야지만 지상으로 나갈 수 있게 설계가 되어있었습니다.
당시에 지하 3층 승강장에만 20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아비규환이 되어 탈출을 했습니다.

1079호 전동차 반대편에서 불어온 바람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바람이 확 불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자동 안내방송으로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반대편 승강장으로 1080호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080호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은 화재 사고가 발생한 줄 모르는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도착한 승강장 플랫폼은 이미 화재로 인해 발생한 연기로 가득차 시야를 가려 주변이 모두 깜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등이 나가서 불빛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 지하속 터널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화재를 인지 못한 1080호 열차의 문이 열리자 열린 문으로 연기가 확 들이 닥쳤다고 합니다.
열차는 승객 몇 명만 내려주고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차는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 이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사이에 연기 때문에 참지 못한 승객들 일부는 그 틈에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은 출발하면 연기가 사라지겠지하는 생각으로 인해서 열차에서 빨리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덮친 화마, 그저 기다린 승객들


계속 움직이지 않는 열차.
계속 움직이지 않고 있는 1080호 열차안은 연기로 가득찼고, 곧 이어서 최초 화재발생 열차 1079호 열차의 화재 사고를 알게 된 1080호 승객들.
그런데 이들은 대다수 열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어서 빨리 열차가 이곳을 벗어나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곧 불길이 1080호 열차로 옮겨 붙었고 이에 1080호 열차도 아비규환의 상태로 변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화재에 놀란 승객들은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119에는 신고전화가 20분 동안 15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이에 소방본부는 초비상 상황임을 인지했고, 대구 전역에 있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일제히 대구 중앙로 역으로 집결하도록 했습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현장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구조를 위해 현장에 진입하는 소방대원들은 지하 3층까지 가득찬 연기로 인해서 바로 앞에 있는 동료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서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연기로 시야는 가려지고 화재로 인한 뜨거운 열기는 방화복을 입은 소방 대원들이 화상을 입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고 또 옮긴 소방대원들.
그런데 상황은 점차 더 악화돼었습니다.
전동차가 있는 지하 3층은 방화복을 입어도 열기가 너무 뜨겁고, 연기 즉 독가스로 인해서 접근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화염은 1시간 40분 동안 계속됐고, 본격적인 진화 작업은 화염이 조금이나마 걷힌 후에나 가능했습니다.
이에 지하 3층에서는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사람들의 뼈만 남고 모두 타버린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하철 특성상 누가 탔는지, 몇 명이 탔는지 알 수 없어서, 화재 사고가 발생한 중앙로역에는 가족들과 연락이 돼지 않는 수 많은 시민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다니며 가족들이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 발생 10시간이 지나도 가족의 생사 확인이 어려운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애타는 실종자 가족들


마지막 병원 진료를 위해서 경산에서 대구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탄 재영 씨의 아내와 딸, 재영 씨는 처음에 대구 화재사고가 났다고 긴급 속보가 나왔을 때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화재가 난 지하철 방향과 아내와 딸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전동차 방향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재영 씨는 무작정 대구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상자,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재영 씨가 찾는 아내와 딸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중앙로역 대구역 CCTV에서 아내와 딸을 포착했습니다.
딸의 손을 잡고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가는 아내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탄 것은 바로 1080호 열차였습니다.


재영 씨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들이 가족을 찾을 방법은 많지 않았습니다.
열차 안에 남은 것은 뼈만 남은 유골 뿐, 그리고 타다 남은 물건들 뿐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비규환이 된 전동차 내부에 수 많은 유해가 뒤엉켜 누가 가족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에 경찰 감식반과 국과수 법의학자들이 총동원 돼어서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은 불에 타지 않을 가족들이 지니고 있을법한 소지품 목록을 적어 유해 발굴단에 전달했습니다.
이에 재영씨는 딸이 걸고 있던 미아 방지 목걸이, 아내가 차고 있던 예물 시계를 적어냈다고 합니다.

 

350명의 사상자, 탈출조차 못한 승객들


당시 지하철에 불을 지른 방화범은 56세(당시)의 김대한 씨.
그는 2년 전부터 시작된 건강 악화로 세상을 비관했다고 합니다.
이에 혼자 죽기는 억울하니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장소를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의 방화로 인해 350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그중 사망자만 192명에 달했습니다.

1080호 사망자, 인재가 만든 대형참사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 방화 사고로 발생한 전체 사망자의 74%가 전동차 1080호에서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화재가 처음 발생한 1079호 열차에서는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080호 열차에 사망자가 집중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하철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컨트롤해야 할 커트롤 타워 종합사령실에서는 이 사고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당시에 근무중인 직원이 3명인데 어느 누구도 1079호 화재 사고를 목격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1080호 전동차의 중앙로역 진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특히 종합사령실은 화재 1분만에 울린 화재경보기와 경보 문구를 오작동이라 여기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1079호의 화재 사실을 안 것은 화재 발생 3분 후, 당시 역무원이 놀라서 화재를 신고했기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간이 9시 55분, 그리고 그 시각 1080호 열차는 중앙로역 이전 역인 대구역에 정차 중이었다고 합니다.


사령실에서는 곧바로 1080호 열차의 진입을 막아야 했지만, 막는 대신에 전체 열차에 다음과 같은 말만 했다고 합니다.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진입 시 조심히 운전해서 가라. 


이에 1080호 열차의 기관사는 무정차 통과가 가능했음에도 지령이 없었기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중앙로역에 진입했고 승상장에 진입해서야 연기를 발견 했다고 합니다.
화재 발생 4분 후의 시간, 승객들은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 때문에 그 자리에서 열차가 떠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기관사나 사령실은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했지만 대피 방송은 전혀 하지 않았고 열차 출발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허비한 시간이 5분, 그 사이에 전기는 다 끊어지고 사령실과 교신도 안 되던 기관사는 뒤늦게 열차 출입문 개방 버튼을 눌렀지만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차 안의 유독가스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열차에 승객들은 탈출하지 못한채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5호칸에서는 승객들이 유리창을 깨서 몇 명이 탈출에 성공했고, 4호칸에는 마침 그곳에 있었던 역무원이 수동으로 문을 열고 탈출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동차 칸의 승객들은 수동으로 문을 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열차의 기관사는 1호칸의 출입문만 수동으로 열어주고 긴급히 탈출했습니다.

지하철역 안에 가득찬 연기로 인해서 어디가 계단인지 출구인지 분간이 안 되기에 전동차에서 탈출한 승객들도 중앙로역을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간 중간 설치해 놓은 방화셔터로 인해서 탈출이 좌절된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검게 그으른 방화셔터에 수 많은 손자국과 발자국이 찍힌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지하철 공사의 은폐 의혹


더 충격적인 일은, 이 사건 이후 지하철 공사 측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의혹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탈출에 성공한 1080호 기관사는 11시간 잠적했는데, 이 시간 동안 지하철 공사의 간부들이 그를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경위서를 쓰도록 하는 등 사건에 대해서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재 다음날 군인 200명을 동원해 화재 정상화를 위한 청소를 지시했습니다.
이에 군인들은 사고 현장의 잔해들을 쓸어 담고 물청소까지 했습니다.
유가족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소중한 단서가 될 유품들이 모두 쓰레기 포대에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 포대에서 실종자들의 유해와 소지품이 150여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대형 참사의 진짜 원흉은?


이 사고가 대형 참사가 될 수밖에 없던 진짜 원흉은 지하철 그 자체였습니다.
방화범이 뿌린 휘발유 2리터에 전동차 두 대가 모두 소진돼었는데, 이는 당시 지하철 안전기준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지하철 설비 소재에 대한 세부 기준이 없었고, 특히 화재 시 치명적인 유독가스에 관련된 기준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천 커버에 스펀지 재질로 만들어진 지하철 의자는 가장 불에 잘 탔습니다.
또한 정기적인 방염처리가 필수임에도 대구 지하철은 개통 이후 단 한차례도 방염처리를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절대 잊으면 안 될 그날


이 화재 사고로 사법처리가 된 사람은 10명입니다.
방화범과 1080호 기관사가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불쏘시개 지하철을 만든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현장에서 발굴한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사진 찍어 모아 놓은 전시회에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유품을 찾았고 이를 토대로 가족들의 유해를 찾았습니다.
딸이 살아있기만 바랐던 한 어머니는 보는 순간 내 아이의 물건임을 알고 주저앉았고, 탈출 의지를 잃고 아이만을 보호하려고 했던 아내의 마지막 흔적을 보고 눈물을 흘린 남편의 이야기.

고통은 유가족들만의 것은 아니였습니다.
생존자들도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고 또한 본인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올해 19주기를 맞이한 대구 지하철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지하철 설비 소재는 모두 불연재나 극난연재로 교체되었고, 화재 대비 메뉴얼도 마련돼었습니다.
또, 승강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상정지시킬 수 있는 버튼이 생겨났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전이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인 셈으로 우리 모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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