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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꼬꼬무 시즌3 삼청교육대 1980 불량배 소탕작전 사건 위치 31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by 충격대예언 2022. 6. 10.

꼬꼬무 삼청교육대 1980년 불량배 소탕작전 인간재생 사건 위치 장소 피해자
31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글 포스팅 순서]

1. 43년 만에 밝히는 진실
2. 막무가내로 끌려간 곳, 삼청교육대
3. 하루 아침에 '불량배, 깡패'가 된 무고한 청년들
4. 참혹했던 삼청교육대 현장
5. 삼청교육대 장소, 위치
6. 완전히 망가진 삶, 지울수 없는 트라우마
7. 불량배 소탕? 실제 이유는?
8.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9. 꼬꼬무 시즌3, 남북 탁구 단일팀 1991년 현정화 리분희 유순복 나이 프로필 근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0. 벌거벗은 세계사 괴승 라스푸틴 제정 러시아 제국 몰락 50회 류한수 교수 다시보기 재방송
11. 손석구 프로필 학력 나이 결혼 영어 여자친구 이설? 집안 아버지 회사 지오엠티
12. 꼬꼬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학살 사건 사망자수 원인 실종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재방송

 

 

6월 10일 목요일 10시 30분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꼬꼬무 시즌3, 시청률: 3.8%) 31회에서는 '1980 불량배 소탕작전' 라는 제목으로 43년 전 그날을 재조명했습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장성호, 배우 임지연, 윤균상이 출연했습니다.

 

43년 만에 밝히는 진실

이승호(가명) 씨가 인터뷰를 위해 '꼬꼬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꼬꼬무'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아무리 사회가 좋아졌어도 안 좋게 볼 텐데,
굳이 왜 나가서 그런 걸 말하려 하느냐.

심지어 승호 씨가 '꼬꼬무'에 털어놓을 이야기를, 아내와 자녀들은 알지도 못 한다고 합니다.
43년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막무가내로 끌려간 곳, 삼청교육대

때는 1980년 여름, 서울에 살던 당시 18살이어던 이승호(가명) 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놀다가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식탁위에 놓여 있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책을 발견한 승호는 책 내용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테이블의 손님들은 그런 승호씨의 책 읽는 내용이 시끄럽다고 타박을 주었고, 그래도 계속 책을 읽은 승호씨는 결국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시비가 붙었고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파출소까지 가게 돼었습니다.
양쪽 모두 다친 사람도, 파손된 물건도 없기에 가벼운 훈방 조치로 풀려나야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다시 검찰청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고 결국 승호와 친구들, 그리고 시비가 붙은 상대방 일행들까지 모두가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버스를 타라고 해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을 했습니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산 속의 군부대였습니다.
주변에는 2중 3중으로 철조망이 쳐 있고,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은 교관들이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탕! 탕! 탕!" 공포탄을 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망가면 죽는다.
고개 들지 말아!

너희들은 하늘을 볼 자격도 없어!

교관들은 이들에게 머리를 땅에 박는 원산폭격을 시켰고, 쓰러지면 군홧발로 사정없이 찼습니다.

승호씨는 그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 순간이 끔찍했다.
'나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는 손주 볼 어르신부터 승호씨보다 더 어린 앳된 아이들, 거기에다가 여성들까지 끌려왔습니다.
이곳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 입니다.

 

하루 아침에 '불량배, 깡패'가 된 무고한 청년들

1980년 8월 4일, 정부는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불량배들을 삼청교육대에 보내 새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말한 '불량배'는 어떻게 선별할 수 있을까요? 그 기준이 굉장히 모호했습니다.


이들이 정한 '불량배'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 재범 우려자

그럼 과연 동네에서 수근거림을 당하는 사람은 다 잡혀가야하나? 건전과 불건전의 판단은 누가 하고?
재범을 할 지 안할 지 어떻게 판단해? 기준이 너무 애매했습니다.
이유만 갖다 붙이면 '불량배' 취급을 받았습니다.
싸움이 난 상황을 구경하는 사람, 외상값이 있는 사람,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들도 이 애매한 기준에서는 다 불량배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24살이었던 박이수 씨도 형이랑 같이 사진관을 운영하던 청년이었습니다.
야구를 굉장히 좋아해서, 야구장에 가서 입장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경찰이 갑자기 그를 끌고 갔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침을 뱉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수씨는 그런 이유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갔습니다.

더 말도 안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나이 23살의 한일영씨.

일영씨는 동네 애들이랑 한강으로 물놀이를 갔다고 합니다.
한참 물놀이를 하고 있다가 경찰에게 끌려 갔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은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도 끌고 갔다고 합니다. 
일영씨는 지금도 이유를 모르지만 아마 끌려갔던 것이 자신의 몸에 있던 문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일영씨 몸에 용이나 호랑이 문양 같은 어마어마한 문신이 있었을까요?
손목위에 있던 '삶'이란 작은 글자 였습니다.
그의 손목에 있던 이 글자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일영씨는 10대 때는 선감학원에, 20대 때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습니다.
선감학원은 선감도라는 섬에 있던 부랑아를 위한 교화시설이었습니다.
'소년판 삼청교육대'라고 불리우는 악명높은 곳이었습니다.
일영 씨는 남들은 한 번도 겪기 힘든 어려운 시간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일영 씨는 가족과 함께 살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친척집에 놀러가던 길에 옷이 허름하다는 이유로 끌려가 선감학원에 수용됐습니다. 선감학원은 어린 소년들을 데려다가 염전, 농사, 산 개간 등의 강제 노역을 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밤낮없이 일하고 구타당하고, 그렇게 죽은 아이들은 뒷산에 암매장했습니다.
지금도 그자리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유골이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현재도 땅 속에 150구 이상의 유해가 있을 걸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어린 일영씨는 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영씨는 청소를 하다가 벽에 걸린 액자를 보고 얼어붙었습니다.
그 액자에는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뎌 나가노라면 곧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곧 그리워하느니라.


액자에 적힌 푸시킨의 '삶'이란 시를 보고 감명 받은 일영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곳에서 본 '삶'이란 시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버티는 힘이자 희망이 됐습니다.
일영이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연탄으로 팔뚝에 '삶' 이란 글자를 새겼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것을 보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같은 선감학원을 목숨을 걸고 탈출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영씨는 그날부터 1년 가까이 수영 연습을 했고, 밀물 썰물 시간도 빠삭하게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물이 빠진 갯벌을 기어 가고,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서, 2시간여 만에 그 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게 18세 때입니다.
그런데 불과 5년만에 일영이가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갔습니다.
바로 그 '삶'이라는 문신, 선감학원에서 새긴 희망 때문입니다.

 

참혹했던 삼청교육대 현장

식당에서 가벼운 시비로 끌려간 승호, 야구장에서 침을 뱉었다고 끌려간 이수, 작은 문신 때문에 끌려간 일영.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는 아무런 잘못 없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삼청교육대로 끌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바로 '할당량' 때문입니다.
당시 삼청교육 대상자 검거 인원을 책정한 공문이 경찰서별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250~300명을 검거해야 됫다고 합니다.
그걸 맞추느라고 아무나 잡아서 죄를 만들어 끼워 맞추었다고 합니다.
물론 끌려온 사람들 중에는 진짜 조직 폭력배나 불량배들도 있었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끌고 가도 되는 걸까요?

이렇게 삼청교육대에 입소한 사람은, 무려 4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에 전과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40%라고 합니다.
최고령은 73세, 최연소는 14세, 중학생이 17명, 여성이 319명.

삼청교육대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돌아갔을까요?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하루 16시간의 일과생활을 보냈습니다.
일과중 가장 힘든 것은 총 8시간의 '훈련'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일 PT체조, 유격훈련, 최대 300kg의 무게를 가진 전봇대 같은 목봉을 들고 움직이는 목봉체조 등의 혹독한 훈련을 하며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식사 시간에는 먹기 전에는 구호를  복명복창 한다고 합니다.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자!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


스스로를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외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준 밥도 10초 만에 먹도록 했습니다.
거기다 교육생들에게 지급된 음식은 극히 적었습니다.
이들에게 음식을 적게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조정 급식 이유.
공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육체적인 반발과 저항력을 감소시키고
질서 유지에 필요한 복종심을 키우고, 

본인의 과오에 대한 회개 속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성공적인 순화교육에 기여토록 함.


즉, 배가 고파야 저항도 못하고 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면, 교관들이 한 쪽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조교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을 한군데 모아둔 일명 '짬통' 앞이었습니다.
날이 더운 여름이면 구더기가 바글댔던 그곳을 가리키며 배고프면 그것이라도 먹으라고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던 피해자들은 그거라도 먹었다고 합니다.

손으로 그걸, 구더기가 있던 말던 먹었다.
그거라도 안 먹으면 죽을 거 같았다.


사람으로서 지키려 했는 최소한의 존엄, 삼청교육대는 그걸 스스로 깨트리게 만들었습니다.
가혹하고 잔인하게,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보다 더 최악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는 허락을 받고 단체로 가서 볼일을 봤습니다.
야외에 웅덩이가 있는데 거기에 빙 둘러서서 소변을 보게 했습니다.
이 오물 웅더잉를 사람들은 '지옥탕'이라고 불렀습니다.
교관들이 개구리를 잡아다가 지옥탕에 집어넣은 후에 그 더러운 오물 속에 훈련생들이 들어가서 잡게 했습니다.
심지어 잠수도 시켰다고 합니다.
숨이 턱 막히고 구역질이 올라와서 고개를 밖으로 내면 교관들이 머리를 꾹 눌러서 못 올라오게 했습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기서 살아나가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4주라는 기간을 그 곳에서 견뎌애 했습니다.
견디디 못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은 공식적인 집례로는 54명입니다.
그 중 10명은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삼청교육대 장소, 위치

삼청교육대의 장소와 위치는 102 보충대(21사단)의 신병교육대와 2사단, 12사단, 21사단 등의 예하산악군단 등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11사단에 있는 유격장은 여자 삼청교육대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군사정부는 1980년 8월부터 81년 1월까지 영장없이 시민들을 잡아갔습니다.
이렇게 잡아들인 사람들은 A, B, C로 나뉘어 A등급은 민감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재판을 받았고 B등급은 순화교육과 봉사, C급은 순화교육을 받았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삶, 지울수 없는 트라우마

삼청교육대에서 돌아온 후에는 후휴증이 생기거나 삼청교육대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야구장에서 침을 뱉었다는 이유로 끌려갔던 이수 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 극심한 후유증으로 형 광수 씨를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비명을 지르고, 벽에다 머리를 박고, 자기 자신을 할퀴고, 말리면 발로 차고 툭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삼청교육대에서의 한달 기간의 삶으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는 결국 요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국어책 때문에 시비가 붙었던 승호 씨는 4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동네에서는 삼청교육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깡패라는 낙인이 찍혀서 동네사람들이 수근댔다고 합니다.
동네에 안 좋은 소문과 더물어 학교는 이미 퇴학 처리가 돼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괴로워 하며 승호 씨는 세상을 원망하며 엇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황하던 아들을 보며 승호 씨 어머니는 눈물을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결국 승호 씨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삶'이란 시를 좋아했던 일영 씨는 삼청교육대에서 4주간의 순화교육을 받은 후, 근로봉사자로 배치가 됐습니다.
6개월간 근로봉사를 하던 일영 씨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 라는 생각으로 선감학원 때처럼 다시 한 번 탈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겨우 탈출을 하고 기차에 탑승했지만, 기차안에서 헌병대에 발각돼 군사재판에 회부됐습니다.
일영 씨는 본인은 죄가 없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판 결과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고, 그의 믿음과 희망은 그렇게 꺽였습니다.

공주교도소에 수감된 일영 씨는 1년 후 출소했습니다.
출소 후 그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팔뚝에 새긴 '삶'이란 문신을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글씨를 지우기 위해서 굵은 소금으로 살이 찢어 지도록 문질렀고 그 위에 세제 가루를 뿌렸다고 합니다.

난 그 시가 좋아서 했을 뿐인데.
그 것 때문에....


이후 어렵게 공장에 취직한 일영 씨에게 경찰들이 걸핏하면 찾아왔다고 합니다.
동네에 무슨 일만 생기면 무조건 용의선상에 올리고 추궁을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삼청교육대에 입소자들을 전산화해서 10년 가까이 수사에 활용했습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이자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입니다.

 

불량배 소탕? 실제 이유는?

심청교육대, 대체 누가 왜 만든 것일까요?
삼청교육대를 처음 만든 곳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입니다.
국보위 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거 전의 전두환이었습니다.
12.12 사태로 권력을 잡고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의 다음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정의사회 구현' 이었습니다.
전국의 불량배를 싹 소탕하겠다며 삼청교육대를 만들었습니다.


곧바로 대대적인 홍보를 했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뒷골목이 밝아졌다' 며 삼청교육대를 칭찬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삼청교육대를 홍보하는 '새 삶의 길'이라는 영상도 있습니다.
이 영상만을 보면 삼청교육대는 사회 정화에 꼭 필요한 곳으로 미화돼어 있습니다.
실상을 모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전두환이 잘한 일이라며 박수를 쳤습니다.

깡패들은 삼청교육대 보내야 한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전두환, 시간이 흘러 그가 물러난 뒤 제 5공화국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전두환은 삼청교육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삼청교육은 고질적인 상습 범죄에 대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특별 교육을 통해 교정함으로써 
민생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시행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 바, 
이는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유감'이지만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삼청교육대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397명, 정신장애 등 상이자 2,768명.
이것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삼청교육대의 피해자 수치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4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승호 씨는 트라우마 때문에 수면제를 40년간 먹고 있습니다.
항상 쫓기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꿈 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인데, 한 번도 나온적이 없다고 합니다.

야구를 좋아했던 이수 씨는 아직도 요양원에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도, 가족도 여전히 못 알아보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야구를 좋아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또렷이 말하는 게 있습니다.

침 안 뱉었어요.


모든 기억이 사라졌지만, 이수 씨는 그날의 그 순간만큼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24살의 청춘은 그날에 멈춰있습니다.

일영 씨는 딸이 어느날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숨이 턱 막힌 일영 씨는, 딸에게 도저히 삼청교육대에 관한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죄인은 아니지 않냐. 
가해자는 대한민국 국가인데, 왜 당신이 숨냐. 
떳떳해져라.


아내의 응원에 용기를 냈고, 40여 년 만에 징역 1년 형을 받았던 것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 결과는 무죄.
일영 씨는 법정에서 나오며 눈물만 흘렸다고 합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힘든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에 나온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입니다.

난 깡패도, 불량배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여러분과 똑 같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삼청교육대에서 당한 일만큼, 세상 사람들의 눈빛이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지난 7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화위)'는 삼청교육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사망, 상이 피해 뿐만 아니라 강제 입소자 모두를 피해자로 인정, 국가가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에 나설 것을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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