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 대한해협 횡단 꼬꼬무 아시아의 물개 사망 원인
조오련 아들 프로필 132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글 포스팅 순서]
1. 그가 전설이 된 이유-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2. 조오련 생애
3. 조오련 프로필
4. 조오련 사망원인
5. 꼬꼬무 중국국제항공 김해 돗대산 비행기 추락 사고 복행하라 129편 생존자 131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6. 2003년 홍대괴담 꼬꼬무 비오는 밤 갑자기 홍대 퍽치기 살인사건 범인 근황 130회 시즌3
7. 원주 사랑의 집 장목사 꼬꼬무 냉동 시신과 천사 아버지 비밀 근황 129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8. 516 군사정변 쿠데타 5.16 혁명? 꼬꼬무 박정희 장도영 128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9. 꼬꼬무 서준이가 사라졌다 울산 계모 살인 사건 범인 오선미 형량 근황 127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10. 돌싱글즈5 장새봄 손민성 현커 목격담 스포 손세아 최종규 김규온 최종커플?
그가 전설이 된 이유-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1968년 11월, 서울 종로에 있는 YMCA 건물 안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사래를 치고 까까머리의 한 소년은 사정사정하며 매달리는데... 무슨 상황인 걸까요?
바로, 한 소년이 회원권 만료일을 위조한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입니다.
회원권은 다름 아닌 수영장 회원권!
소년은 오직 수영 하나만을 바라보고 학교까지 관두며 땅끝마을 해남에서부터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는데, 생계를 위한 간판 집 심부름부터 수영장 청소까지 하면서 그 외의 모든 시간을 수영 연습에만 매진했던 의지의 소년.
그의 정체는 바로 훗날 대한민국 수영 역사의 레전드가 된 조오련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소년이 전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공할 때까진 절대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수영.
그렇게 출전한 첫 대회, 1969년 6월, 전국체전.
소속 학교가 없던 열여덟 오련은 일반부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일반부 사이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놀랄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휩쓸더니 마침내 대한민국을 대표해 경기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
당시 메달 26개 중 26개 전부를 쓸어갈 정도로 수영 강국이던 일본과 실력을 겨루게 된 조오련입니다.
과연 1년간의 피나는 노력에 대한 결과는 어떨까요?
이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한민국 수영의 새 역사를 쓴 조오련.
혜성처럼 등장했던 조오련은 다시 한번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오직 헤엄으로만 대한해협을 건너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조오련은 고강도의 훈련 끝에 예상 기록을 무려 6시간 앞당긴, 13시간 16분 만에 60km 거리의 대한해협을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오련의 도전이 새롭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이 곧 도전이었던 조오련. 그동안 전해지지 않았던 그의 진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를 통해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조오련 생애
1952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10남매(5남 5녀) 중 10번째로 태어나1968년 10월 10일 해남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1월 3일 상경해 누나 집에서 지냈습니다.
곧 그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에 있던 한 간판가게에 취업해 일하게 되었는데, 간판가게 근처에 마침 당시 국내 유일의 실내 수영장이었던 YMCA 관광호텔 수영장이 있어 우연히 이 수영장의 존재가 눈에 띄었습니다.
조오련은 이에 11월 7일 등록했는데, 당시 중동고등학교 야간부 학생들의 텃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수영 연습에만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9년 6월 제50회 전국체육대회 서울 예선에서 수영복도 없이 사각팬티만 입은 채 자유형 400m와 1,500m에 출전했는데, 뜻밖에도 두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경기가 끝난 뒤 서울 양정고등학교(55회)에 스카웃되어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오련은 1970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손발이 남달리 커서 수영을 하기 좋은 몸이라는 평가는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러다 양정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70년, 그는 방콕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m에서 1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때 예상치 못한 금메달 소식에 뒤늦게 기자들이 몰려와 수영복 차림으로 호텔 복도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 자유형 1500m에서도 1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자 조오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이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처음 경기에 나섰지만 당시 여건상 선진 체육 기술을 배울 여건이 되지 못했고 결국 조오련은 늘 하던대로 자신에게 익숙한 준비운동을 했는데 이를 두고 다른 나라 선수들이 비웃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조오련은 무서운 속도로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이후 경기에서 조오련의 준비운동을 비웃던 선수들이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따라했었습니다.
1972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72 뮌헨 올림픽 수영에도 참가했습니다.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자유형 1,500m에 출전하여 모두 1위를 차지, 대회 2연패를 달성했고, 또한 자유형 200m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고려대학교 졸업 직전인 1975년 7월 산업은행에 입사했고, 1976년 졸업 후 경상남도 의령군에 있던 산업은행 지점에서 근무했으나 얼마 안 가 사직하고 수영선수로 복귀했습니다.
현역 시절 마지막 국제대회였던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접영 2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그해 수영 부문 한국 신기록을 누적 50회째 수립했으나, 그와 동시에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 1979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학사편입해 1981년 졸업했으며, 수영에 대한 열정 또한 멈추지 않아 1980년 48km의 대한해협을 13시간 16분에 횡단했고, 1982년 34km의 영국 도버 해협을 9시간 35분만에 횡단했습니다.
한편, 1989년 조오련 수영교실, 1993년 조오련 스포츠센터를 세워 후진 양성에도 주력하였으며, 1998년 2월부터는 대한수영연맹 이사를 맡았습니다.
다만 연맹 이사직은 차남 조성모의 대학 문제 때문에 맡았던 거고 조직이나 틀에 박힌 형식을 싫어했던지라 이사직 내내 반목했던 탓에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또한 2002년 다시 한 번 대한해협을 횡단했고, 2003년 한강 700리 종주에 성공했습니다.
2005년 8.15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장남 조성웅, 차남 조성모와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93km 거리를 18시간 만에 횡단했으며, 2008년에는 민족대표 33인을 기리고자 하는 의미로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2001년 아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아 성황을 이루던 수영교실 사업까지 완전히 접었습니다.
이후 2009년 4월 지금의 아내 이성란을 만나 사랑을 싹틔우고 재혼해 도전을 위한 훈련 준비를 하는 등의 모습도 방영된 바 있을 정도였고, 스스로도 2010년 대한해협 2차 횡단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혼 몇 달만인 2009년 8월 4일 오전 11시 32분,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급하게 해남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낮 12시 45분에 향년 56세로 결국 별세하였습니다.
당초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선산에 안장되었으나, 2021년 5월 6일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에서 조오련이 '국가사회공헌자'로서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의결해 2021년 6월 12일부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이장되었습니다.
이는 손기정·민관식·서윤복·김성집·김일 등에 이어 스포츠인으로는 6번째 국립묘지 안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아들) 장남 조성웅은 대한민국 해군 UDT/SEAL에서 하사로 복무하였으며, 차남 조성모는 고려대학교 동문입니다.
조오련 프로필
생년월일(출생일): 1952년 10월 5일
고향(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 학동마을
사망: 2009년 8월 4일(향년 56세)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자택
묘소(묘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국적: 대한민국
본관: 한양 조씨
학력: 해남고등학교 중퇴, 양정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 학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 학사
주종목(수영): 자유형
가족: 아내(배우자, 부인, 와이프), 장남 조성웅, 차남 조성모
조오련 사망원인
조오련의 최종 사인은 심장마비에 의한 `심폐정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돌연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고인의 평소 지병이나 약물복용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조오련씨가 일반들에게 건강하게 비쳐졌던 모습과 달리 최근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자주 과음을 했다는 주변의 얘기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오련씨가 대부분의 돌연사와 마찬가지로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심장마비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관상동맥질환은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져 피의 공급이 잘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부분소에서 조오련씨의 시신을 부검한 뒤 사인을 심근경색과 심장동맥의 경화 및 석회화, 심비대증으로 결론지었습니다.
박정의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40대 후반 이후의 나이에 발생하는 돌연사의 대부분은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거나, 수축돼 있는 상태에서 심장 근육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아 부정맥이 유발되는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강석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평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평소 생활습관이 중요하겠지만, 과격한 운동이나 스트레스로 갑자기 치명적인 부정맥이 생겨 돌연사로 이어지는 `비후성 심근증'을 추정해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꼬꼬무 중국국제항공 김해 돗대산 비행기 추락 사고 복행하라 129편 생존자 131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2003년 홍대괴담 꼬꼬무 비오는 밤 갑자기 홍대 퍽치기 살인사건 범인 근황 130회 시즌3
원주 사랑의 집 장목사 꼬꼬무 냉동 시신과 천사 아버지 비밀 근황 129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516 군사정변 쿠데타 5.16 혁명? 꼬꼬무 박정희 장도영 128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꼬꼬무 서준이가 사라졌다 울산 계모 살인 사건 범인 오선미 형량 근황 127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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