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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꼬꼬무 시즌3 작전명령 174호 장사 상륙작전 장사리 전투 이명흠 대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33회 재방송

by 충격대예언 2022. 6. 24.

꼬꼬무 시즌3 작전명령 174호 장사 상륙작전 장사리 전투 이명흠 대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33회 재방송

[글 포스팅 순서]

1. 꼬꼬무-작전명령 174호, 돌아오지 못한 소년들
2. 맥아더 장군의 특별한 편지
3. 전쟁터로 내몰린 10대 소년들
4. 극비 작전명령 174호
5. 아비규환 전쟁터, 200고지를 점령하라
6. 작전 성공, 하지만 남겨진 소년들
7. 필사의 탈출
8. 문산호와 함께 잊힌 소년들

9. 살인범의 진실 게임 움막 살인 사건 울산 우도산 박동일 형사 정수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재방송
10. 꼬꼬무 시즌3 삼청교육대 1980 불량배 소탕작전 사건 위치 31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1. 남북 탁구 단일팀 1991년 현정화 리분희 유순복 나이 프로필 근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30회
12. 광주 민주화 운동 학살 사건 사망자수 원인 실종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재방송

13. 꼬꼬무 시즌3 재방송 다시보기 시간

 

꼬꼬무-작전명령 174호, 돌아오지 못한 소년들

6월 23일 목요일 10시 30분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꼬꼬무 시즌3, 시청률: 3.3%) 33회에서는 '꼬꼬무-작전명령 174호, 돌아오지 못한 소년들' 라는 제목으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상륙작전을 재조명했습니다.

이날 이야기 친구로 배우 박효주, 가수 폴킴, 설지가 출연진으로 나왔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특별한 편지

보낸 사람의 이름이 '더글라스 맥아더'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사람인 그가 보낸 특별한 편지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여 수행한 작전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 하며,
나는 그들을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전우로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편지 내용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6.25 전쟁 때 '명부대'라는 이름의 작은 부대를 이끌었던 이명흠 육군 대위입니다.
인천 상륙작전에서 이 대위의 명부대가 어떤 역활을 했기에 맥아더 장군이 이렇게 특별한 감동의 편지를 보냈을까요?

 

전쟁터로 내몰린 10대 소년들

1950년 9월 11일, 서울은 함락되고 계속 남쪽으로 후퇴하던 국군은 낙동강 이남까지 내려왔습니다.
낙동강 전선마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북한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수세에 몰린 국군에게는 판을 뒤집을 만한 한 방이 필요 할 때 였습니다.
그 한방이 바로 인천상륙작전, 바다를 통해 인천에 기습 상륙해 북한군의 허리를 끊는 방법입니다.
성공하면 북한군을 고립시킬 수 있지만, 노출이 쉬운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고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의 디데이를 9월 15일로 정하고, 3일 전부터 비밀스러운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먼저 연합군의 함대가 전라도 군산 앞바다에 집결해 북한군을 공격하다 철수하고, 다음 날에는 강원도 삼척 바다에서 공격을했습니다.
기습 공격에 놀란 북한군이 반격하면 연합군은 바로 철수했습니다.
바로 성동격서,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군산에서, 삼척에서 먼저 공격을 펼쳐 북한군의 시선을 이리저리로 돌리려고 한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두고 700명이 넘는 군인들이 부산항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의 군인들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군번줄조차 없는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학도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부산항에서 큰 배 한 척을 타고 어디론가 출발했습니다.
배 이름은 '문산호'.


이들 중 한 명인 이기일 씨. 당시 중학교 3학년 16살이었다고 합니다.

내 또래들이 많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군에 가야하지 않겠냐,
그래서 바로 입대를 하게 됐다.


전쟁통이라서 군인이 한참 모자랐습니다.
기차역 같은 곳에서 군인을 모집했고, 이기일 씨도 그렇게 군에 자원했고, 당시 19세였던 최대환 씨도 고향 친구 4명과 동반입대를 했습니다.
대구에 살던 18세 이규호 씨도 동네에 박격포가 떨어지는 걸 보고 북한군이 이곳까지 쳐들어왔구나 생각하고 군입대를 결심했습니다.

 

장손이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아버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어.
한참 후에 돌아오셨는데 손에 뭔가를 들고 계셔.
소고기 한 근이였어.
그때만 해도 소고기가 귀했다.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 였으니까.
달달 볶아서 날 주는데, 못 먹겠더라.
동생들이 자꾸 봐서. 그래서 안 먹고 동생들 줬다.
전쟁터에 가거든 뒤에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제일 선두로 가라고 했다.
그래야 살아 나온다고.


이런 전쟁에 나선 학생들, 바로 학도병입니다.
이런 학도병들이 문산호에 무려 7백여명이나 타고있었습니다.

 

극비 작전명령 174호

학도병들은 정식군인이 아니라 군번이 없고, 목에 걸고 다니는 군번줄도 없었습니다.
이런 학도병들에게는
군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인 '유격대원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문산호에 타 학도병들에게는 '육군본부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라는 명칭이 부여됐습니다.
이명흠 대위가 이끌어서 이 대위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약칭 '명부대'라고 불렸습니다.

어린 소년들이 모여 있으니, 문산호 내부는 마치 학교에 온 것처럼 화기애애했습니다.
배안에는 아직 전쟁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해맑은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맑은 아이들과 달리 이 배의 지휘관 이명흠 대위는 걱정 어린 눈으로 학도병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문산호가 출항하기 이틀 전, 이 대위는 육군본부에서 명령을 받았습니다.
'작전명령 제 174호'

육군본부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D일 H시 P장소에 상륙을 감행시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제1군단 작전을 유리하게 하라. 
세부는 작전 교육국장으로 하여금 지시하게 함.


혹시라도 명령서가 북한에 넘어 갈까봐, 시간과 장소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세부내용은 작전국장이 이 대위에게 구두로 전달했습니다.

영덕 해안에 상륙해서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하라.
거기서 딱 3일만 버티고 철수하도록.


총을 잡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은 어린 학도병들을 작전에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상부에 이야기한 이대위의 이야기를 묵살했고 700여 명의 학도병을 장사 상륙작전에 투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대위는 대원들을 볼러 모아 보급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보급품은 3일치 식량으로 먹을 미숫가루와 건빵, 그리고 군복과 총이었습니다.
군복은 북한군, 인민군 옷이었습니다.
북한군으로 위장해 침투하는 작전이였기 때문입니다.

대한의 용사들이여, 우리는 지금 영덕군 장사리로 간다.
적군이 점령한 200고지를 탈환하고 보급로를 끊는다.

 

아비규환 전쟁터, 200고지를 점령하라

장사리는 산으로 둘러싸인 해안 지형이었고, 북한군의 핵심인 김무정 군단이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여기 해안에 명부대가 상륙해서
 학도병들을 데리고 북한이 점령하고 있는 영덕 장사리 일대 적진에 침투해 200고지를 탈환하고 7번 국도를 막아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던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상륙작전이 시작되면 인근 북한 병력이 다 이쪽으로 모일테니,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노림수도 있었습니다.

이 대위는 학도병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두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을 잘라 제출한다. 
부모님께 드릴 말씀도 같이 적도록 해.


혹시라도 잘못되면 이걸로 장례를 치러야 하니까. 순간 배 안에는 긴장감이 가득했습니다.


출항한지 10시간이 지난 새벽 2시경. 
장사리 해안 100미터 지점 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포소리가 들리고 총알이 빗발쳤습니다.
내리기도 전에 북한군에 노출됬습니다. 급하게 후퇴하려 했더니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암초에 걸려 배가 그 자리에 멈춰 버렸어. 이대로 있다가는 상륙도 하기 전에 몰살될 위기에 쳐했습니다.
결국 이 대위가 결단을 내렸어. "전원 상륙 개시!" 그리고 배 문이 열렸습니다.

눈앞에 캄캄하고 아무것도 안 보였고, 파도는 높고 바람에 배는 요동쳤습니다.
육지까지 100미터가 남았는데, 대포며 총알이며 빗발쳤습니다.
다들 겁이 나서 발이 안 떨어졌고, 1중대부터 상륙을 시작했는데, 내리는 족족 적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 가고.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문산호 선원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밧줄을 몸에 묶고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육지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해안가 소나무에 밧줄을 연결했습니다. 이어 2중대 상륙 개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형을 끌어안고 보니까 허벅지에서 피가 철철 났다.
형을 배 안으로 옮기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규호는 울면서 다시 밧줄을 잡았고,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한참 만에 모래사장에 도착했고, 날은 어느새 밝아졌습니다.

북한군의 총알이 계속 날아오는 가운데, 학도병들은 손으로 모래를 파고 그 속에 들어가 총을 겨눴습니다.
하지만 총이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바닷물에 젖어서 망가졌기때문입니다.
부랴부랴 물을 빼고 들어간 모래를 털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군 진지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뒤따라 온 미국 호위함에서 함포 사격에 나섰기때문입니다.

지금이다, 전 대원!
200고지를 향해서 돌진!


 이 대위의 걱정과 달리 작전 개시 12시간 만에 영덕 장사리 일대에 있는 200고지를 탈환했고 7번 국도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작전 성공, 하지만 남겨진 소년들

작전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학도병들은 곳곳에 쓰러진 친구들의 시신을 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전쟁의 비참한 실상을 맞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대위와 소년들은 전우의 시신을 한군데로 옮기고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적들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북한군이 밤새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아침이 되니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7번 국도를 차단해서 보급로를 끊어야 하는 이 대위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서둘러 폭파조를 투입시켰고, 7번 국도에 놓인 다리 2개를 폭파했습니다.
학도병들은 장사리 마을 반대편 271고지까지 모두 접수했습니다.
이 일대가 전부 태극기 물결로 변했습니다.
어린 소년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었던 것입니다.

이에 북한의 관심도 영덕의 장사리에 쏠렸습니다.
당시 북한의 라디오에까지 이런 장사리의 상황에 대해서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은 병력을 총동원해 장사리로 향했습니다.

이에 학도병들은 급히 장사를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애워싸고 있는 적진을 뚫고 포항까지 이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명흠 대위는 미군에 요청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미군에서 구조선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구조선 도착 장소로 정해진 곳은 장사리 해안이었습니다.
학도병들은 이미 장사리를 떠나 포항으로 남하하고 있었고 장사리는 북한군이 이미 재점령한 상황이라 적진으로 다시 침투해야 했습니다.

새벽 5시, 저 멀리 구조선이 나타났습니다.
 구조선에서 구명정 두 척이 다가왔고, 하나 둘씩 구명정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200고지에서 북한군의 기관총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유엔군도 즉각 지원사격을 했습니다.
이런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학도병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습니다.
구명정 두 척으로 안되니, 누군가는 밧줄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헤엄을 치고, 그렇게 구조선으로 향했습니다.

구조선으로 향하는 중 곳곳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이들이 있었지만 학도병들은 다친 친구들을 도울 수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갔습니다.
겨우 구조선에 올라 살았다고 안도하던 그때 구조선 정중앙에 박격포가 떨어졌습니다.
이에 8명의 학도병이 전사했고 배에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이에 미군은 곧바로 구조선의 문을 닫고 출발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흠 대위는 미군 소령을 가로막고 아이들을 태워야 한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안됩니다!
아직 못 탄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의 애원은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었습니다.

미군 소령은 밧줄을 잘라 배를 출항시켰고 구조선을 향해 헤엄쳐오던 소년들은 실망감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구조선에 동료들이 탈 수 있도록 방어했던 이들이 미처 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구조선도 눈물바다가 돼었습니다.

당시 최대환 씨도 배에 타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못 태우고 배는 떠났다. 
그 당시 광경은 참, 뭐라 말도 못할 정도로 실망이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가 이제, 수십 명은 남겨두고 배는 배대로 떠나니. 
가끔 생각난다. 장사 후퇴할 때 그 모습이.

 

필사의 탈출

그렇게 장사리에 남겨진 소년들은 30여명.
아이들은 북한군을 피해 풀숲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곧 북한군에 발각되어 포로가 돼었습니다.


북한군은 학도병들에게 인민군이 되라고 회유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인천 상륙작전이 대성공을 거두자 전세가 역전되었고, 북한군들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북한군들은 북한으로 후퇴하기 시작했고, 포로가 된 소년 학도병들은 열흘 밤낮을 계속 걸어 북한군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러다 힘들어서 쓰러지면 북한군은 총알도 아깝다며 대창으로 아이들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남겨졌던 대환이는 고향 친구 진목이와 탈출을 감행했고, 우연히 만난 군인들에게 인민군복에 숨겨뒀던 유격대 대원증을 내보이며 도와달라 외쳤습니다.


그렇게 자유가 된 진목이와 대환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구조선을 타고 구조된 학도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을 떠난지 3년만에 휴전이 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가족들을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대환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함께 전쟁터에 학도병으로 참가했던 고향 친구 진목이가 전쟁터에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환이는 친구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문산호와 함께 잊힌 소년들

많은 희생자가 나온 장사 상륙작전.
그러나 그곳에서 전사한 소년이 몇 명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죽거나 실종된 사람이 139명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단지 추정치일 뿐이고 애초에 참여한 인원도 확실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작전명령 174호'  그 종이 한 장 빼고는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작전 지휘관 이명흠 대위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기록을 찾아 나섰습니다.
결국 그는 중령으로 예편, 군복을 벗고 대원들의 행방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대위는 국방부에 참전자 명단을 요청했지만, 기록이 없으니 참전했던 사람이 증거를 대라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제출했던 손톱과 머리카락도 전쟁통에 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이 대위는 작고할때까지 30년 넘게 학도병들의 행방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미완의 명단을 남겼습니다.

유해가 발견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좌초된 문산호는 그대로 방치해 훼손됐고,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1991년 처음으로 문산호의 탐사가 진행됐는데 이는 장사리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대원들이 방송국에 의뢰해서 진행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유해 발굴에 나선 것은 1997년이 처음이었는데 이는 전쟁이 끝난지 44년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유해발굴에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22년, 또다시 유해발굴을 시도했습니다.
생존대원들의 간절한 요청에 따른 발굴이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청춘들의 희생을 모른 것을 아타까워하며 희생된 소년들 중 한 명이라도 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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