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강남 S고 잔혹사 상문고 사학비리 사건
학생 투쟁 교사 양심선언 106회 게스트 출연진
[글 포스팅 순서]
1. 학교의 봄 - S고 학생 투쟁과 교사들의 양심선언
2. 학교의 봄 - 강남 S고 잔혹사
3. 상문고등학교 사학 비리재단 전개 과정
4. 꼬꼬무 시즌3, 106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5. 히로시마 원자폭탄 꼬꼬무 원폭 히로시마 카운트 다운 피해자 김형률 105회 출연진 게스트
6. 여우고개 포천 자매 살인사건 꼬꼬무 일산 여중생 자매 백골 시신 범인 근황 104회 게스트 출연진
7. 꼬꼬무 911 테러 범인 사망자 한국인 생존자 소방관 비행기 이유 103회 게스트 출연진 재방송
8. 독도의용수비대 꼬꼬무 독도 1954 독도대첩 홍순칠 대장 최후의 의병 기념관 102회 게스트
9. 꼬꼬무 완벽한 타인 존속살인 용의자 딸 장서희 이혼부부 사망 살해사건 시즌3 101회 재방송
학교의 봄 - S고 학생 투쟁과 교사들의 양심선언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106회는 1994년, 강남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학비리 사건을 조명했습니다.
1993년 11월, 강남의 한 명문 사립고에서 전국 모의고사가 시험을 치렀습니다.
고3을 코앞에 두고 치르는 시험이라 모범생 민근이는 바짝 긴장한 채 답안지를 채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1교시 시험이 끝나자 선생님은 답안지를 걷지 않고 “각자 집에 가서 채점해”라고 말했습니다.
시험을 본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시험지를 유심히 살피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11월인데 시험지엔 ‘7월’이라고 적혀있던 것입니다.
모의고사 주관 출판사에 문의한 민근이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학교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얻은 기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는 마치 공식 모의고사인 것처럼 시험료까지 받고 풀게 한 것입니다. 평소에도 이 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보다 더 자주, 더 많은 돈을 내야 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거사를 도모했습니다.
이른 새벽 세 명의 아이들이 숨죽여 교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는 곳곳에 직접 작성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이 전단지엔 그동안 A교장이 보여준 폭력적인 언행과 가짜 모의고사 사건 등 비상식적인 일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전단지를 작성한 학생 색출 작업이 진행됐고, 해당 학생들은 퇴학까지 당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94년 3월, 끝내 침묵할 수 없었던 교사들이 나섰습니다.
무려 35명의 교사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교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한 것입니다.
당시 S고는 매년 새 학기 각 반 담임이 진행하는 기초작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학부모의 직업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일명 ‘VIP 리스트’로 불리는 명단엔 전현직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공무원, 의사, 교수 등 사회 유력층 포함 무려 300명 정도가 올랐습니다. 이들 자녀 중엔 성적이 상향 조작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학교 학부모들은 학교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씩 찬조금 명분의 돈을 내야 했습니다.
A교장이 교사들로 하여금 강제로 할당량을 채우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게 수년간 부정 축재했고, 그는 사학 재벌이 돼 있었습니다.
A교장과 그의 비리를 도운 측근들은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학생과 교사들의 희생과 눈물 끝에 찾아온 S고의 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날로부터 6년이 지난 2000년 초 학교에 비리 이사장이 다시 올 수도 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은 사실이 됐습니다.
재단 이사진에 교장의 아내, 누나 등 측근들이 선임됐습니다.
이들은 새 교장 자리에 과거 A교장의 측근이었던 B교감을 임명했습니다.
학교는 다시 A교장 일가에게 넘어갈 위기에 놓였습니다.
교사들은 교육청으로 달려가 항의 시위를 하고 졸업생들은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습니다.
재학생 2,000여 명은 단합된 목소리로 ‘정의’를 외쳤습니다.
불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비리재단 복귀 반대 시위는 급기야 전경들과 교복 입은 학생들의 충돌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눈물겨운 용기는, 학교의 봄을 가져오게 될지 대한민국 학교의 뜨거웠던 ‘그날’ 이야기를 꼬꼬무에서 집중 조명했습니다.
학교의 봄 - 강남 S고 잔혹사
상문고등학교의 비리재단 관련 사건입니다.
198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 첫 해에 고등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례적인 사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고등학생이라고 사회투쟁에 나섰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고 1994년에 청소년단체 '샘' 사건으로 인해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 운동권은 흔했습니다.
4.19 혁명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언니, 누나, 형, 오빠들을 잡아가지 말라고 하면서 초등학생들이 당당히 투쟁에 나섰습니다.
세월이 지나 1990년 6월에는 대구 달서 경화여자고등학교 학우 김수경이 투신자살로, 9월에는 충북 충주 충주고등학교 학우 심광보가, 1991년 연쇄 분신 파동 당시 전남 보성 보성고등학교 학우 김철수가 분신자살로 항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에 맞는 의식을 형성하게 한다는 산 증거입니다.
상문고등학교 사학 비리재단 전개 과정
1994년에 재단과 교장의 비리와 횡포를 도저히 감내하지 못하고 일부 교사들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상춘식 교장 및 그의 아내 이우자 이사장의 학생부 성적 조작 및 공금 횡령 비리 사건이 발각되었다.
당시 비리에 대한 이야기들 중 가장 유명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학교 강당을 짓는다고 학생들에게 돈을 걷고 다음날 현재 상문고 옆에 있는 그 골프장이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대학 입학에 따라 촌지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대는 100만원부터 시작해서 연고대는 그보다 낮은 액수 등.
이 사건으로 이사장과 이사들이 구속, 수감되었고, 재단 이사의 해임 및 관선 이사의 파견이 이루어졌으며 교육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99년 말부터 비리 재단(상춘식 일가)이 학교 복귀를 노리고 꼼수를 부리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학교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2000년 1학기 말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시위에 돌입하여 학생회 측에서 1학기 기말고사를 거부하고 2000년 7월 초에 아침 10시경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서초동 법원, 검찰청 앞까지 진출해 전대미문의 시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이 시위는 계획된 시위가 전혀 아니었고 학교 운동장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누군가 법원으로 나가자는 즉흥적인 제안에 모두들 순식간에 동요되어 갑작스레 이루어진 시위였습니다.
사실 상문고에서 서울지방법원과 검찰청이 위치한 서초동 법조단지까지는 거리가 한두 블럭 정도로 상당히 가까운 편이어서 걸어서도 10분대로 접근 가능하기에 이런 즉흥적인 제안이 자연스레 먹혀 들어간 것이다.
운동권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비리 재단 복귀를 반대한다는 일념 하에 즉흥적으로 벌인 시위였기에 일반적인 시위와는 달리 아는 운동권 노래도 전혀 없어서 교가와 애국가만 죽어라 부르긴 했습니다.
1,500여명 가까이 되는 전교생들이 갑작스레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온 탓에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서울고 사거리와 그 주변 골목에서 출동한 전경들과의 대치 상태가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학생들이 더 이상 진출하는 것을 막고자 전의경들이 사거리 사방 길을 전경 차량을 활용하여 담을 만들고 방패를 형성하여 차단막을 형성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고 폭력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1,500여명의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이 힘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것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보니 압사당할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나머지 학생들보다 한참 형 뻘인 전의경들은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 압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단 과정에서 학생들과 충돌도 발생하여 전경의 무자비한 곤봉과 군홧발, 방패 세례 등에 의해 팔골절 등의 부상을 입은 학생도 있었고 시위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학생들과 전경 사이에 방패처럼 서 있던 학부모가 누군가 던진 물체에 맞아 부상을 당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경에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서울고 앞 사거리 일대의 교통은 당연히 마비되었는데 사정이 급한 건지 짜증이 난 건지 어느 덤프트럭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전경 차단막이 뚫리는 바람에 학생 시위대가 서초동 법원, 검찰청 쪽으로 진출하는 길을 터 주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서초동 서울지방법원과 검찰청 사이에 있는 대로변 막다른 길에 모인 학생들은 학생회장 및 학생회 임원들의 삭발식을 진행했습니다. 재단 반대 시위 구호와 교가를 부르며 계속 시위를 진행했으나 시위 장소가 법원/검찰청이라는 워낙 국가 중요 시설에 인접한 민감한 곳인지라 시위 진압용 장갑 차량까지 등장하여 해산 방송을 하는 등 전경의 압박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학생들의 전투력이 급감한 탓에 이내 자진 해산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연행된 학생들은 없었지만 오후에 이뤄진 자진 해산에는 당시 날씨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시위는 낮 최고 기온이 무려 33.0℃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속에서 한낮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계획 없이 급작스럽게 시작된 시위였던지라 학생들은 날씨에 대한 그 어떠한 대책도 없이 교복 하복 차림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더위와 햇볕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더위에 탈진하거나 피부에 화상을 입은 학생이 나오는가 하면 오랜 시간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으면서 바지가 녹아 눌러붙었다는 이야기조차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 시위 이후 조금 사태가 잠잠해지는 듯 싶었지만 아직 근본적 해결책이 없었기에 불안한 상황 속에서 학교가 운영되다가 이듬해인 2001년에는 재학생들의 등교 거부, 담임교사 이중 배정, 신입생들의 학교 배정 거부와 당시 2학년 학생들의 집단 전학 신청으로 인해 학교 자체가 완전히 붕괴될 뻔했습니다.
교사들끼리 재단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각자 담임교사를 배정한 것이다.
그래서 2001년 3월 개학과 함께 각 반에 담임교사가 2명씩 와서 서로 실랑이를 벌여 학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당시 1학년 신입생은 기존 입학 인원의 80% 이상이 입학 거부 및 전학 신청을 하였고 2학년 학생들도 전체 인원 중 20% 가량 정도가 전학 신청을 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복귀 재단 측에서 교장으로 임명된 장방언(아래쪽 사진의 갈색 양복 입은 교사)이라는 사람은 이들을 진정시키거나 설득하는 노력도 없이 그냥 전학 신청서에 도장만 쾅쾅 찍어대는 한심한 작태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교육청의 신입생 재배정 조치에 대해 기존 재학생들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정상화한다더니 폐교조치를 하는 것"이라면서 격렬히 반발하여 서울 서초동에 위치했던 유인종 당시 교육감의 자택 앞에서 새벽 4시까지 밤샘 농성을 한 데 이어 서범석 당시 부교육감과 간담회를 통해 이러한 대책을 유보시켰습니다.
결국 2001년 당시 신입생들의 80%는 다른 학교로 옮겼지만 이후 신입생들이 배정되지 않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교사들도 이 사태로 인해 파벌이 나뉘었는데 재단 복귀를 반대하는 쪽은 상대위(상문고사태 대책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찬성하는 쪽은 상미교(상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사들의 모임)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파벌이 아직도 교무실 내에 불문율처럼 존재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재단 복귀를 반대하였지만 시위 등의 각종 운동이 맞물려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되고 나서 학생회를 비롯한 일부 학생들은 상미교 측 교사들을 상춘식에 미친 교사들이라고 하며 2000년 7월 시위 당시에 상미교 교사들 중 대표 교사들의 사진을 붙인 인형들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하는가 하면 상미교 교사의 차량을 일부러 파손하고 도망가거나 상미교 교사들과 관련된 사실무근인 악성 루머까지 돌았습니다.
2000년에 대법원은 상춘식이 고등학교의 교장으로서 학부모들로부터 1988년 3월경부터 1993년 3월경까지 사이에 모금한 찬조금 중 금 1,133,900,000원과 1992년 4월경부터 1993년 12월경까지 사이에 징수한 보충수업비 중 금 601,774,500원을 합한 금 1,735,674,500원을 보관 중 1986년경부터 1990년경까지 사이에 피고인의 위 학교법인에 대한 토지매매계약해약반환채무금 888,400,000원의 일부, 1986년경부터 1988년경까지 사이에 피고인의 처 공소외인의 보석상 인수로 인한 채무금 650,000,000원의 일부, 1992년경부터 1993년경까지 사이에 피고인의 빌딩 신축자금 중 금 400,000,000원의 변제에 각 사용하고 그 나머지 금액을 1988년경부터 1993년경까지 사이에 생활비 등으로 사용함으로써 횡령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성적조작 등의 혐의와 합쳐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94고합531, 서울고등법원 95노36, 대법원 99도457)
2002년에 대법원에서 전 이사장 상춘식에게 동인학원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이사진 승인 취소는 정당하다고 패소 판결을 내려 2001년에 파견했던 5차 관선이사(이사장박경양 참교육학부모 부회장) 3명의 자격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봄까지 교육청에서 이사를 파견해서 운영하였습니다.
1심 판결 뒤 법률신문, 2심 판결 뒤 법률신문(서울행정법원 2000구5868, 서울고등법원 2000누9467, 대법원 2001두2874) 덤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교장이었던 상춘식은 상씨 종친회에서 제명까지 당했습니다.
덕분에 특이하게 '공립보다 더 공립스러운' 사립학교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명문이었던 덕분에 동문회의 지원 등이 빵빵해서 사립 같은 공립 학교인 옆 학교(서울고등학교)와는 정 반대되는 상황인 듯합니다. 사건 이후에는 목천 상씨 문중에서 운영하고 있고 학교법인 명칭도 동인학원에서 상문학원으로 환원하였습니다. 상춘식으로 대표되는 문제의 구 재단이 학교 운영에 복귀하려고 소송을 걸었으나 결국 패소하면서 구재단의 복귀는 차단되었습니다.
2012년에 관선 이사진의 철수 및 상채규 이사장을 필두로 상기숙(한서대 중국학과 교수), 상원종(전 국회 사무총장 직무대리), 이한수(선인장학재단 이사), 윤기원(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구희석(전 강동교육지원청 관리국장), 이자흠(상문고 교장)으로 구성된 정이사가 선임되면서 상문고등학교는 정상화 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상문고등학교 사태는 사실상 해피 엔딩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5월 25일을 끝으로 상채규 이사장의 임기가 종료되었고 상문학원 새 이사장에 상원종 전 국회 입법차장이 선임되어 정상화 2기 이사회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도 정상화 이후 상문고등학교는 상춘식 집안이 아닌, 상씨 문중이 설립한 학교가 맞다는 해석을 내려 완전히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몸싸움까지 발생할 정도로 격렬한 다툼이 있었지만 구 재단이 퇴출된 이후 학교를 차지한 신 재단도 상당한 비리 재단이다 보니 나중에는 신재단의 횡포와 비리에 견디다 못한 이들이 오히려 과거에 부도사태를 불러온 비리재단인 구재단을 지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부산에 위치한 브니엘학원 사태가 있지만 상문고등학교가 서울에 있는 것에 비하면 브니엘학원은 저 멀리 부산에 있는 데다 아웃풋도 다소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유사 사례로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구재단 복귀 시도 사례나 안양시 신성중학교, 신성고등학교 구재단 복귀 시도 사례도 있었으나 이쪽은 상문고등학교처럼 구재단이 소송에서 패소하면서(법원이 사학의 공공성을 우선시하여 판결하였다.) 구재단의 복귀가 차단되고 학교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사실상 해피 엔딩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2012년에 상문고등학교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잊혀질 줄 알았으나 2013년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게 법외노조 통보를 하면서 이유로 든 해 직교사 9명 가운데 한 명이 이 사건으로 인해 해직된 것으로 드러나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1994년 상문고 교장으로 있었면서 보충 수업비를 유용한 혐의가 드러난 상춘식의 부인 이우자와 상춘식의 친 누나 등 6명은 1999년 말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상문고를 운영하는 동인학원의 새 이사진으로 선임 승인을 받자 교사들이 시 교육청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했는데 당시 점거 농성을 이유로 기소되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고 당연 퇴직된 것입니다.
국가 공무원은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당연퇴직, 즉 파면된다.
이후 결과는 교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서울시교육청이 이사진 선임 승인을 취소하고 관선이사를 파견했고 이에 이씨 등이 임원승인취소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으나 1심 선고에서 이사진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임시이사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도 받아들여졌고 2심, 3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두사부일체 영화에서 상춘고라는 이름으로 거의 동일한 사학비리를 다루었습니다
이사장 이름도 상춘만입니다.
또한 두사부일체의 주연 정준호는 비슷한 사학비리를 다룬 영화 공공의 적 2에서는 비리재단 명선재단의 이사장으로 나옵니다.
꼬꼬무 시즌3, 106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날 방송에서 반가운 얼굴, 만능 엔터테이너 김정민이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 게스트로 등장했습니다.
당 시대의 경험자로서 척하면 척. 그 시절을 떠올리며 높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잠시, 세상을 향한 어린 학생들의 용기에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는 첫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성장형 아이돌 크래비티 정모가 함께했습니다.
이야기 시작부터 설마설마 하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듣던 정모는 엄청난 몰입감을 보여줬습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는 ‘데블스 플랜’으로 2023년을 뜨겁게 달군 미국 변호사 출신 방송인 서동주가 찾아왔습니다.
탁월한 기억력만큼이나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서동주.
부정하고 부당한 상황이 나올 때마다 촌철살인 멘트들로 제작진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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