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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꼬꼬무 범인 유골발견 미제사건 버니어 1991년 110회 출연진 게스트

by 충격대예언 2024. 1. 11.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꼬꼬무 범인 유골발견 미제사건 버니어 
1991년 110회 출연진 게스트

[글 포스팅 순서]

1. 아직 끝나지 않았다-1991 개구리 소년
2. 1991년 개구리 소년 사건의 개요
3. 개구리 소년 사건의 경과
4. 대구 와룡산 기슭에서 유골 발견
5. 아이들 살해 수법
6. 아직 끝나지 않았다_1991 개구리 소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7. 꼬꼬무 시즌3, 106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8. 개구리소년 실종 살인 사건 범인 흉기 범행도구 버니어 캘리퍼스? 당신이 혹하는 사이 4(당혹사 시즌4)

9. 권대희 사건 꼬꼬무 수술실의 유령 성형외과 의사 검사 성재호 CCTV법 109회 출연진 게스트
10. 캄보디아 훈 할머니 꼬꼬무 오지 할머니의 비밀 고향 가족 108회 출연진 게스트 시즌3
11. 유일한 박사 냅코 프로젝트 꼬꼬무 요원A 가족 유일선 유일링 유재라 재방송
12. 꼬꼬무 강남 S고 잔혹사 상문고 사학비리 사건 학생 투쟁 교사 양심선언 106회 게스트 출연진
13. 히로시마 원자폭탄 꼬꼬무 원폭 히로시마 카운트 다운 피해자 김형률 105회 출연진 게스트
14. 주담대 갈아타기 대환대출 주택담보대출 비대면 아파트 중도상환수수료
아직 끝나지 않았다-1991 개구리 소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110회에서는 역대 최악의 미제사건인 '개구리 소년 사건'을 조명했습니다.

앞서 '꼬꼬무'는 1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을 상대로 아이템 선정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사건이 후보로 올라온 가운데 '개구리 소년 사건'이 1위로 선정됐는데, 오늘 방송에서 드디어 사건의 내막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편의 부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1991 개구리 소년'입니다.

때는 1991년 3월 26일.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일로 임시공휴일이었습니다. 
철원이, 종식이, 호연이, 영규, 찬인이까지 다섯 아이들은 호연이 집에서 놀다가 밖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도록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날, 아이들을 본 목격자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잡으러 간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개구리가 아닌 도롱뇽 알을 채집하기 위해 와룡산으로 향한 아이들. 
가족들이 동네와 와룡산 일대를 뒤졌지만 아이들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날한시 5명의 초등학생이 실종됐지만 범인도, 범행 도구도 알아내지 못한 채 3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꼬꼬무'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미제 사건이 된 개구리 소년 사건의 모든 것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특히 개구리 소년 가족들이 출연해 직접 지난 33년간의 이야기와 근황을 전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아들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철원 군의 아버지를 비롯해 아이들의 부모님과 친척들이 직접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 
내 아이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님은 급히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잔인하게 찢어 놓았습니다.
장트리오와 이야기 친구들도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만든 통화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경찰의 수색에도 아이들을 찾지 못하자, 아버지들은 생업을 접은 채 직접 거리에 나섰습니다. 
트럭에 아이들의 사진을 확대해서 붙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국을 돌아다녔던 시간, 잠을 자다가도 뛰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실종 5년 뒤, 가족들이 절대 잊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심리학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의 정체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심리학자는 범인의 집에 아이들이 암매장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집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의 정체와 암매장 소동의 결말은 무엇일까요?

국내 단일 실종 사건 중 최대 규모의 인원이 동원되고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던 개구리 소년 사건. 
그러나 많은 관심이 무색하게도 실종 11년째가 되던 2002년, 아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2024년. 
어떤 사람들은 공소시효도 지난, 이미 끝난 사건을 왜 자꾸 이야기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시신은 화장해서 강에 흘려보냈지만 한 가지 흘려보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두개골입니다.
이것은 진실을 찾기 위해 남겨 둔 아이들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사건의 진실 찾기, 그리고 유족들이 전하는 뜨거운 호소와 눈물의 메시지를 '꼬꼬무'를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1991년 개구리 소년 사건의 개요

1991년 3월 26일 대구직할시(現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서 지역에 살던 5명의 국민학생들이 도룡뇽알을 주우러 인근 와룡산에 올라가서 동반 실종되었다가 실종된 지 11년 6개월이 지난 2002년 9월 26일에 백골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에서도 가장 이렇다 할 단서가 없는 사건으로 현재도 이 사건에 대한 추측이나 가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으며 이 사건은 발생한 지 32년이 지난 지금도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범인의 윤곽은커녕 피해자의 신원이나 행방조차 밝히지 못한 채 미궁 속으로 빠진 사건은 전국적으로 많이 보도되었지만 이렇게 불가사의한 사건의 경우 당대의 이슈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수사 인력의 편중으로 인해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묻힌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대천 영유아 연쇄유괴살인 사건은 개구리 소년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고 범인과 범행 수법 역시 오리무중이지만 개구리 소년 사건만큼의 수사와 관심을 받지 못해 인지도가 훨씬 부족합니다.

이 사건은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 3대 영구 미제사건으로 불릴 정도로 전국민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결정적 증거가 있어 끝내 범인을 찾아냈습니다.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은 범행 동기가 확실하고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었습니다. 
반면 이 사건은 밀폐되지 않은 산 속에서 5명을 한꺼번에 살해한 범행 수법과 대대적인 수색이 이어졌음에도 윤곽조차 잡지 못한 범인, 살해 동기조차 불확실한 점, 그리고 시초부터 마지막까지 불가사의 투성이었습니다.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미제사건 중 가장 의문점이 많은 사건을 꼽아 보라면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언급하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의문이 아닌게 없습니다.
우선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훤히 아는 인근 산이었다는 것과 흔적이나 범인의 정체, 살해 수법등 모든 것이 수수께끼와 같고 이렇게 5명이나 되는 초등학교 3~6학년 나이대의 남자아이들을 산에서 전부 살해하고 암매장하는 식의 사건은 국내외 막론하고 비슷한 유형의 사례조차 찾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의혹이 들 수 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도롱뇽 알을 채집하려고 집 근처 와룡산에 올라갔다가 실종되었는데 사건 초기에 도롱뇽이 개구리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5명의 아이들은 일명 ‘개구리 소년’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개구리 소년으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도롱뇽 알을 구하러 나갔다가 실종되었다고 보도하면 당시 개구리와는 달리 도롱뇽을 잘 모르는 전국의 많은 아이들이 도롱뇽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지니고 괴생명체로 오인할까 봐 일부러 인지도가 높은 개구리로 보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구리와 달리 도롱뇽은 대한민국에선 서식지가 제한적인지라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도 아니기 때문에 개구리 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사건 당일 5명의 아이들이 가는 길에 만난 친구에게는 탄두를 주우러 간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와룡산에 있었던 육군 제50보병사단 사격장에서 흘린 탄피를 주우러 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나 개구리 소년 살인 사건 혹은 대표적으로 개구리 소년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정식 사건명은 대구 성서초등학교 학생 실종 사건이었는데 2002년 9월 26일에 아이들의 시신들이 발견되면서 대구 성서초등학교 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의 경과

사건 초기 경찰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무작정 5명의 아이들이 가정불화로 가출로 인한 앵벌이로 이용되었을 것이라는 엉뚱한 수사 방향을 정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5명 아이들이 모두 집안 사정이 부유하진 않았어도 별다른 문제 없이 화목했기 때문에 가출할 만한 사유가 없었으며 더구나 실종된 아이들 중 가장 연장자이던 우철원 군이 13세, 나머지는 거의 갓 10대에 들어섰고 특히 막내인 김종식 군은 9살로,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 나잇대의 아이들이 가출이란 엄청난 일을 벌이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본격적인 수사를 늦추는 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남은 유력한 가능성은 유괴 아니면 가출인데 딱히 유괴범으로부터 오는 협박 전화도 없었을 뿐더러 앵벌이 조직이 굳이 외딴 마을에 찾아와 아이들을 깡그리 납치해갈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번잡한 도시에서야 아이 1명이 갑자기 사라져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람이 얼마 살지 않던 시골 마을에서는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난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골에는 '골목대장'의 말을 부모님의 말보다 더 듣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초등학교 6학년 '형님'의 말이라면 아이들이 이끌려 갈 수도 있기에 호기심에 타지에 놀러갔다가 범죄에 연루된 게 아니냐는 추측에 의거해 초기 수사 방향이 정해졌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정체불명 살인마가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추측에는 누구도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면서 5월 5일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군과 경찰이 총동원되어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된 와룡산 주변은 물론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초반에는 수색 인력이 부족해 와룡산 서남쪽과 연못만 수색했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가 7월부터 대구지방경찰청 산하에 수사본부가 차려져 총 25개조에 1조당 25명으로 구성됐고 이곡동 성서파출소 옆 건물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10월 24일부터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이 수사본부장을 겸하면서 대구지역 군경 수천명이 탐침봉까지 들고 와룡산 전체를 뒤졌으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996년 해체 전까지 5년 간 연인원 30만명을 동원하여 산악수색 48차와 일제 검문검색 43차 외에 복지시설 및 종교단체 1천여개소, 가정집 11,000세대를 각각 수색했고 성서초 졸업생 1,800명과 공단 노동자 19,000여명에게도 수소문해 제보만 570여건이나 됐지만 전부 허사였습니다.

경북 구미에선 목격 제보가 들어왔고 부산에서 앵벌이로 커피를 팔거나 새우잡이배에 납치됐다는 등의 제보도 나왔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워낙 유명해진 탓에 허위제보도 잇따랐는데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 OO로 찾아와라" 같은 장난전화가 빗발쳤고 자기가 실종 어린이들 중 한 명이라는 장난전화를 하면서 부모를 놀리는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신이상 증세를 앓던 어린이가 "내가 개구리 소년"이라고 주장하고 떼를 쓰며 난동을 부리거나 심지어 부모가 자녀에게 장난전화를 시키기도 하는 등 부모와 조사하던 경찰들을 허탈하게 하여 수사에 혼선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국민들의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덕분에 각 기업들이 개구리 소년들을 찾기 위해 홍보에 진력했습니다. 그래서 전화카드나 담배갑은 물론 당시 즐겨 보던 만화, 비디오테이프 등에는 어김없이 개구리 소년과 관련된 광고가 삽입되었고 우유나 과자 포장에도 개구리 소년 찾기 광고가 인쇄되었습니다. 

특히 포항제철은 대구지방경찰청에 현상금 1천만원을 기탁해 가며 전단 80,000장을 임직원과 고객들에게 뿌렸고 한진그룹도 대한항공과 한진고속 승객 및 임직원, 고객들을 상대로 100만장을 뿌렸습니다. 
럭키도 수퍼타이 등 전 제품에 실종자들의 사진을 붙이고 수퍼타이 CF '미아찾기 캠페인'을 통해 홍보했으며 국민신용카드도 1991년 11~12월까지 대금청구명세서를 담을 우편봉투에 개구리 소년 찾기 광고를 실었습니다.

또 개구리 소년을 주제로 한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1992년 11월 개봉)이나 노래도 제작되었고 MBC 《생방송 여론광장》- '얘들아, 어디있니?' 편(1991년 5월 4일 방영분)을 비롯해 SBS 《그것이 알고싶다》(1993년 3월 21일 방영분), KBS1의 《사건 25시》(1993년 6월 26일 방영분) 등에서 심층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대교출판에서 해당 사건을 소재로 한 동화 《개구리 잡으러 간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이기창 저)》를 출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1970년대에 남파 간첩을 훈련시키는 교관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북한 공작원이 남한 고교생 등을 납치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 공작원의 납치설도 떠돌았습니다. 심지어 허무맹랑한 UFO 납치설까지도 제기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사실은 인류가 아니라 어느 별의 외계인이라서 외계인이 고향으로 돌려보낸 것이라는 개소리까지 돌았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나병 환자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경찰이 나환자촌까지 가서 수색하려다 한센인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자와 심령술사, 역술인들 역시 이 대열에 동참하면서 경주 왕릉 매장설, 김종식 군 자택 매장설, 고속도로 교각 매장설 등 온갖 소문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큰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찾지 못했고 결국 영구 미제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돌며 자식들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 부모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허사가 되어 갔습니다. 

1993년 1월에 실종자 부모들이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에게 탄원서를 냈지만 9월에는 직접 수색을 포기했습니다. 
1995년에 경찰은 컴퓨터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자란 후의 얼굴을 예상한 가상 몽타주를 실은 전단을 2만여장이나 뿌렸고 1996년에는 대구경찰청은 수사본부를 해체하고 관련 업무를 달서경찰서 수사전담반으로 넘김에 따라 경찰서장이 본부장을 맡고 수사인력도 총 10명으로 줄었습니다.
1997년 8월에는 40대 여성이 법정에서 자신이 개구리 소년을 유인 후 암매장했다고 밝혔지만 허위 진술로 밝혀졌습니다.

 

사건 발생 약 10년 후인 2001년 7월에 전남 신안군 지도면 증도의 한 염전에서도 제보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급파됐으나 허위로 판명났고 그해 10월 22일 김종식 군의 아버지 김철규 씨가 슬픔을 술로 달래며 살던 게 화근이 되어 간암으로 사망해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사건 이후 다른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던 모습과 1993년 당시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에 응했던 모습을 보면 본래 그는 매우 건장한 체격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유도를 해서 매우 건강했다고. 그런 그가 간암에 걸려 죽을 정도로 폭음을 했으니 아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게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알 수 있습니다.

유골 발굴 전인 2002년 9월 한 남성이 "아이들이 묻힌 곳을 알고 있다"라며 거짓 제보를 했는데 하필 유골 발견 전날에 들어온 제보라 제대로 엮였습니다. 경찰은 이 남성의 몽타주를 만들어 전국에 수배했습니다. 
이 몽타주가 개구리 소년 살인 사건의 범인의 몽타주로 알려져 돌아다니는데 범인의 몽타주가 아닙니다.

결국 이 남성은 경찰서에 자수해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노태우 정부가 강경대와 김기설 사건 등 당시의 어수선한 시국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죽여 암매장한 공작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고 조사해 보니 10여년 전 권투해서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머리를 다쳐 정신이상 상태였으며 서울역과 명동성당 등지를 전전하던 노숙자였습니다.

대구 와룡산 기슭에서 유골 발견

 세간의 관심이 거의 사라졌던 2002년 9월 26일, 실종으로부터 11년 6개월 만에 도토리를 주우러 와룡산에 올라갔던 오우근씨에 의해 5명의 유골이 와룡산 기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구 육군 제50보병사단 사격장 부지였으며 50사단은 이미 1994년에 북구로 이전했습니다. 
실종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불미골을 중심으로 수색하였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멀리 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여 벌어진 실책입니다.

2011년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의 분석에 따르면 1990년대 초를 기준으로 한국의 야산들 대부분이 녹화사업 전이라 민둥산에 가까웠고 와룡산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인근은 군 사격 훈련장이 있기 때문에 성인들도 발길이 뜸하였고 그만큼 수풀이 우거진 지점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비가 내리면 실개천 같은 게 형성되는 지점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11년이 지나서야 유골이 발견된 이유에 대해선 사건 당일 저녁에 비가 내린 탓에 아이들의 흔적이 모두 빗물에 씻겨 내려간 탓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견 당시 쉽게 눈에 띈 것은 그 해 여름 폭우로 살짝 덮인 흙 등이 씻겨 내려갔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 군부대 사격장과 가까이 있어서 탄피가 많이 발견되었고 실제로 인근 어린이들이 탄피를 모으기 위해 와룡산에 자주 올랐다는 제보도 잇따르면서 일각에서는 오발탄에 의한 타살로 추정되었습니다.

발굴 이틀 후 대구경찰청은 수사본부를 다시 구성해 의욕을 보이는 듯했으나 경찰들은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 성급한 수사를 해 빈축을 샀습니다. 대구달서경찰서는 시신 발견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경찰은 무슨 의도였는지 현장보존도 하지 않고 과학수사대도 부르지 않은 채 곡괭이 등을 이용해 땅을 파헤쳐서 현장을 훼손시켰습니다. 또 정확한 부검도, 현장감식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파헤쳐낸 유골만 봤으면서도 "상식적으로 봤을 때 타살 흔적은 거의 없는 거 같다."거나 "조난을 당했고 추위에 떨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다"라고 주장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경찰은 사건 현장을 건드려서 크게 훼손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그것이 알고싶다에 보도된 영상을 보면 의경들이 삽질을 하고 형사들이 유골을 함부로 마대에 정리해 담아놨습니다. 이 꼴을 본 서울대학교 법의학과의 이윤성 교수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할 말을 잃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시신 중 감식반의 현장 감식을 받은 시신은 단 1구뿐이라고 합니다.

결국 법의학자들의 부검 결과 둔기로 맞거나 흉기에 찔려 타살된 것이라는 추정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사망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당연히 범인도 알 수 없었으며 범죄 도구도 불분명해서 경찰이 여러 도구를 가지고 조사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가장 유력한 범행도구는 용접 후 슬래그를 깨거나 긁어내는 데 사용하는 용접망치로 일명 깡깡이 망치나 버니어 캘리퍼스(?) 종류입니다.

아이들 살해 수법

1996년 1월에는 "실종된 김종식의 아버지인 김철규가 아이들을 모두 토막살해한 후 그 집에 암매장했다"는 한국과학기술원 소속의 자칭 범죄 심리학자인 김가원의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집안 곳곳을 파내는 촌극을 빚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그때까지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가원의 주장에 따라 김 씨의 집 바닥을 파헤쳤으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김 씨의 집에서는 아이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가 막힌 일에 당사자인 김철규 씨가 ''사람을 두 번 죽여도 분수가 있지..." 하고 분노하자 김가원은 "증거가 안 나왔는데 더 할 말이 없죠..."라며 기자들의 추궁을 피하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이후 그는 카이스트에서 해고되었고 심리학회에서도 제명되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모 웹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해서 여론을 모으는 한편 2002년네 유골이 발견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여전히 자기 주장이 맞다고 고집하며 2005년 11월 15일에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라는 저서를 쓰기도 했으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피해자들의 싸늘한 유골 앞에선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오판했던 것은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그 외 다른 가설들은 신빙성이 있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떠돌던 진범설 중 이 김 씨 범인설과 2008년쯤에 어느 재미교포가 주장한 김 씨 아내 범인설을 조합한 음모론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 가설 자체가 완전히 부정된 터라 구경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범인이 1명이었다면 2~3명의 아이는 손으로 붙잡는다고 해도 다른 2~3명은 달아나거나 반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범행 당시의 정황을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실험을 통해서 '어른 1명이 5명의 아이를 붙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추측했습니다.

게다가 이 5명은 깡통이나 작대기 등을 들고 산과 들을 매일같이 뛰어다녀서 운동 신경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아이들입니다. 살해된 아이들 중에는 달리기 육상대회에 나갈 정도로 달리기가 빠른 아이도 있었으며 태권도를 익힌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초등학생들이라곤 하지만 저학년이 아니라 최소 3~6학년생들이고 와룡산을 안방마냥 드나들던 운동신경을 지닌 남학생들인지라 어린이라고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을 어른 한 명이 모두 다 통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011년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3대 영구 미제 사건 특집에서는 범죄심리학자 박지선교수의 말을 통해 '아무리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해도 5명이나 되면 범죄자의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축되는 면이 생긴다'는 분석과 범인이 1명이었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에 오르거나 일시적으로 한두 명이 떨어져서 놀던 차에 아이들 중 일부를 먼저 발견하였고 순차적으로 살해하였을 가능성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일단 도룡뇽 알을 채집하겠다며 나갔다고 했으니 장소에 도착해 각각에 한 구역을 맡기고 그곳을 찾아보라고 했을 것이고 자연히 자신들에게 맡겨진 구역을 탐색하다가 이들 중 한 명이 우연찮게 범인에게 발견되어 희생된 후 희생자의 행방이 궁금해 찾던 다른 아이가 발견되어 같은 방식으로 희생됐을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중 가장 힘이 세고 나이가 많은 맏형인 우철원 군은 두개골에 찍힌 상흔만 무려 25군데나 발견됐는데 이는 다른 소년들보다 범인에게 더 맹렬히 저항하다가 본보기로 크게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두개골에 찍힌 'ㄷ'자 모양의 상흔들이 흐트러짐 없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며 이는 소년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생긴 외상흔이라고 합니다.

가장 막내인 김종식 군의 왼팔이 골절된 것은 범인이 소년들을 뒤에서 붙잡고 오른손으로 흉기를 내려쳤다는 가정 하에 왼팔을 먼저 들어서 막은 것으로 보아 범인은 오른손잡이이며 소년들의 좌측 두개골에 나타난 상흔들만 봐도 우측에서 위아래로 강하게 내려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영규 군의 옷소매와 단추는 찢어져 있었으며 강한 물리적 압력에 의한 것으로 매듭 역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기 위해 묶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박찬인 군과 조호연 군에게는 특별한 외상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소년들이 차례로 희생된 후 가장 마지막에 남아서 교살당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1993년 3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분에서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룬 바 있는데 당시 성서국민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함승훈 군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함 군도 사건 당일 개구리 소년들과 비슷한 시간대에 와룡산에 갔는데 "골짜기 쪽에서 다급하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후 유골이 발견된 2002년에 대학생이 된 함 씨는 다시 이 방송의 인터뷰에 응했는데 "당시 비명소리가 들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절대 잊지 못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와룡산에서 5명의 아이들이 피살된 게 분명하지만 당시 경찰은 이 주장을 거의 무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비롯한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그 외에도 해당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수많은 이들이 의외로 눈여겨보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어찌저찌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쳐도 도대체 어느 세월에 어떻게 매장했냐는 것이입니다. 이후 이루어진 대대적인 수색작업에 탄로나지 않을 정도로 깊게,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닌 다섯 명이나 매장할 만큼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채종민을 비롯한 법의학자들은 여러 정황 증거로 보아 아이들이 희생된 직후에 매장된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결국 이 부분은  프로파일러들의 의견처럼 '계획성과 우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는 부분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난 후 저체온증으로 인한 변사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유골 발견 직후부터 경찰이 역설(力說)한 주장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 사건을 추적해 온 김재산 국민일보 기자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은 타살이 아니라 조난 후 저체온증으로 인한 변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가능한 한 조난설에 가능성을 두자면 산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 상황에서 갑자기 큰 비바람을 만났다면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여지도 없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계곡 방면으로, 근처의 풀숲에 숨어서 비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도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타살의 정황이 너무나 명백하기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_1991 개구리 소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03년에 대구경찰청은 수사본부를 해체했습니다.
2005년 11월 28일에 유족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소시효 연장/폐지를 촉구했지만 2006년 3월 26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습니다.

2015년엔 내사마저 종결됐기에 이제 와서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처벌할 수 없습니다.
공소시효를 무시하고 수사가 가능한 경우도 존재하긴 하지만 범인에 대한 더 이상의 단서가 없어서 수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현재까지도 범인 또는 범인을 아는 사람이 자수하지 않는 이상 잡힐 가능성조차 안 보이며 설령 다른 사건으로 인해 이미 수감되었는데 그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져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2019년 9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가 잡히자 민갑룡 경찰청장이 이 사건도 재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건은 모든 게 의문투성이고 실질적인 증거가 아이들의 유골뿐인데다 그마져도 알아낼 수 있는 증거가 제한적인지라 진척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간간이 방송에서 유족들의 근황을 취재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왜 아픈 기억을 자꾸 들춰서 유족들을 괴롭히냐'는 반응도 나오지만 정작 가족들은 "미제사건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대중들에게 재차 알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픈 기억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이들과 사건이 잊히는 게 더욱 괴롭다고 합니다.

실종 이래 성서초 측은 유해 발견 전까지 실종자들을 쭉 정원 외로 학적에 남겨둔 채 관리해 왔으나 발견 후 2003년 2월에 명예졸업장이 추서됐습니다. 소년들의 유해는 2004년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후 두개골만 경북대에 보관됐고 나머지는 대구시립화장장에서 화장돼 성주대교에서 뿌렸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1979년 울산에서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3명이 가재를 잡는다고 산으로 간 뒤 실종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한 것이었고 산나물을 캐던 할머니들에 의해 28일 만에 발견되어 생환했습니다.
발견 당시 극심한 영양실조로 인해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시골 아이들이라 그나마 야생에서 먹을 것을 직접 채취할 줄 알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3명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3명이 다시 모여 매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50사단이 이전한 와룡산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생겼고 고등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사건 당시와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2020년 1월, 싱가포르 국영매체 CNA에서 한국의 '개구리 소년 실종'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실종 소년들의 부모님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26일 대구시는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에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안전 기원비'를 제막했습니다.
2021년 4월 15일,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해당 사건처럼 10년 이상 된 구조대상 범죄피해에도 구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2021년 7월 20일, 경찰인 우철원 군의 외삼촌이 코로나 백신 교차접종(1차 아스트라제네카, 2차 화이자) 후 자택에서 쓰러졌으나 숨졌습니다. 고인이 경찰의 길을 택한 계기도 이 사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희생자 우철원의 친형인 우영택은 해당 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에 취재기자 역으로 출연했으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194번 참가자 역으로 출연하는 등 배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줄다리기에서 기훈의 상대 편 선두로 등장하는 역할이며 엔딩 크레딧에서의 이름은 '기훈 상대 선두'입니다.

2022년 4월 22일, 김영규 군의 아버지 김현도 씨가 지병인 뇌경색으로 인해 향년 79세로 숨을 거뒀습니다.

2022년 6월 8일, 당시 서울 여의도를 운행하는 버스에서 20대 남자 둘과 함께 있는 아이들을 봤다는 목격자가 보배드림 커뮤니티에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글을 올렸는데 종일 베스트에 올라왔습니다.
해당 글의 글쓴이는 아이들이 타고 있던 버스 내부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할 정도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고 이를 여러 차례 매스컴과 경찰에 제보하였으나 묵살당했다고 합니다.
다만 아이들의 유골 발견 시점이나 장소를 생각하면 이 목격담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2023년 5월 6일 박찬인 군의 아버지 박건서 씨가 급성 뇌경색으로 향년 69세로 숨을 거뒀다는 사실이 같은 해 7월 7일에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꼬꼬무 시즌3, 110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이야기에는 배우 장혁진, 슈퍼주니어 신동, 스테이씨 시은이 이야기 친구 게스트로 나섰습니다.

장혁진은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함께했습니다.

장혁진은 개구리 소년 실종 CF가 나오자 직접 봤던 기억이 난다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또한,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끝내 눈시울을 붉힌 장혁진은 "아이들 죽음의 이유를 알 때까지 부모님들이 건강히 잘 버티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슈퍼주니어 신동이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습니다.

진성 꼬물이답게 '꼬꼬무'의 특징을 분석해 온 신동은 뛰어난 예측력을 선보이며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이야기 후반, 장성규가 내민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평소 눈물이 없는 편이라고 말한 신동이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는 스테이씨 시은입니다.

시은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 알기 어려움에도 깊이 공감하며 끝내 울음이 터져 말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꼭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꼬꼬무' 백 열 번째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1991 개구리 소년' 편에서 함께한 이야기 친구 게스트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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