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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꼬꼬무 이춘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프로필 63년생 직업 학교 아들 근황 83회 게스트 살인의 추억

by 충격대예언 2023. 6. 15.

꼬꼬무 이춘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프로필 63년생 직업 학교
아들 근황 83회 게스트 살인의 추억

[글 포스팅 순서]

1. '살인 12+2, 악마의 고백', 연쇄살인범 이춘재 검거의 전말
2. 이춘재 생애
3. 처제 살인
4. 화성 연쇄살인사건
5. 이춘재 근황
6. 꼬꼬무 시즌3, 83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7. 이춘재 프로필

8. 꼬꼬무 한필화 한필성 한계화 이산가족 상봉 남매 우리는 만나야 한다 82회 게스트(나이 프로필)
9. 꼬꼬무 흥남철수 작전 흥남부두 메러디스 빅토리호 기적 현봉학 성심당 81회 게스트 재방송
10. 낙동강변 살인사건 꼬꼬무 장동익 최인철 재심, 보상금 경찰 진범은? 미제사건, 80회 게스트

 

 

'살인 12+2, 악마의 고백', 연쇄살인범 이춘재 검거의 전말

연쇄살인범 이춘재 검거의 전말과 법정진술 육성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꼬꼬무')를 통해 방송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꼬꼬무'는 '살인 12+2, 악마의 고백' 편으로, 연쇄살인범 이춘재를 조명했습니다.

때는 2019년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의뢰가 들어온 건 무려 30년 가까이 된 장기미제사건의 증거품이었습니다.

우리나라 DNA 감식의 1인자인 강필원 과장도 그렇게 오래된 물건을 감식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건에 대해 듣는 순간 강 과장의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1990년, 성폭행을 당한 뒤 무참히 살해된 13살 소녀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기회는 단 한 번, 반드시 범인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범인의 DNA를 찾기 위한 신중한 감정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된 증거품에서 한 남자의 DNA가 검출됐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지역에서 무려 10명의 부녀자가 잔인하게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희대의 살인사건.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한 최악의 미제 살인사건의 범인이 33년 만에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 
경기남부경찰청은 곧장 수사본부를 차리고 이춘재가 있는 교도소로 은밀히 내려갔습니다. 
베테랑 형사들과 프로파일러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춘재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춘재는 표정 변화 없이 화성사건은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개인적인 얘기를 나눌 땐 화기애애하지만 조사를 시작하면 입을 꾹 닫아버렸습니다. 수사팀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심리 싸움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이춘재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라며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종이 한 장을 건넸습니다. 종이에는 '살인 12+2'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성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은 총 10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살인이 더 있다는 의미일까요?
'12+2' 이 숫자에 잠들어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춘재 생애

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 연쇄강간범입니다.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 후에 살해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이며,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국을 공포로 떨게 만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입니다.
이 사건들을 비롯한 살인 행각으로 총 15명을 살해한 그가 검거된 이후 이 사건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판 조디악 킬러, 잭 더 리퍼로 불렸던 인물로, DNA 분석기술 발달에 힘입어 2019년에 용의자로 특정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총 10차에 걸쳐 일어났다고 알려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10차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못했고, 8차 사건은 모방범으로 부정확하게 수사가 종결 나는 등 당시 대한민국 과학 수사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 2019년 10월 1일 모방범으로 확정되었던 8차 사건을 포함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차 모두 이춘재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하였으며, 그 외 4건의 살인 사건을 자백.
총 15건의 연쇄 살인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경찰에 자백했습니다.
현재 이춘재가 자백한 범죄 사건들에 대해서는 진위를 확인 중입니다.

현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 이춘재의 DNA가 발견된 사건은 5건(3차, 4차, 5차, 7차, 9차)입니다.
그 외 검사했으나 발견되지 않은 사건은 2건(2차, 10차), 증거물 부족 등의 이유로 검사가 불가능한 사건은 2건(1차, 6차), 유일하게 용의자가 잡힌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본인이 자백하여 재심이 이루어졌고 기존의 무고한 사람도 무죄판결이 나왔으며, 8차 사건 수사 당시 증거조작,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이춘재의 상세한 자백(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 등 자백) 등으로 결국 8차 사건 또한 모방 범죄가 아닌 이춘재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2020년 12월 28일 이춘재가 저지른 사건 중 처벌받지 않은 살인 14건과 성범죄·강도 등 9건에 대한 혐의가 모두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습니다.

이춘재는 1963년 1월 31일 고향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에서 태어나 30년간을 근방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착하고 조용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춘재를 착하고 대답도 잘하고 성품도 좋은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동창들 역시 이춘재를 매우 착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으며,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은 아이였다고 기억했습니다.
부모와 남동생 역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이춘재가 저지른 처제 살인사건도 '우발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동생이 물에 빠져 익사한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으며, 이춘재 주장에 따르면 어릴적 동네 누나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이런 성경험으로 인해 왜곡된 성욕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수원시에 있는 삼일실업고등학교에 입학해 1983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춘재는 본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1983년 중순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군대에서 제1기갑여단에서 조종수로 복무, 전차를 몰며 성취감을 얻으면서 성격이 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가 모는 전차가 선도하면서 뒤로 다른 전차와 보병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주체성, 삶의 주도권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됐습니다. 심지어 전차 정비 등 검열을 위해 휴가를 반납할 정도였습니다.
1986년 1월 23일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습니다.
그리고 전역 후에 단조로운 생활에 무료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전역 후 화성군의 전기부품회사에 근무했습니다. 
이후 행적 추적에 따르면 전역 직후 1986년 초부터 화성에서 무차별 강간 범죄를 시작했고 1986년 하반기에 처음으로 살인을 했습니다. 이후 화성 연쇄살인 사건 및 추가 범행들을 저질렀습니다.

1990년 초여름경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모 건설주식회사(건설하도급업체)에 들어가 포크레인 기사를 따라다니다가 운전을 배워, 면허 없이 포크레인 기사로서 공사현장을 따라다녔습니다.

1991년 전후로는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의 한 골재회사에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으며, 그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1992년 4월에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다니던 회사가 망하자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처제 살인 사건으로 조사받을 때 경찰 조서에는 "1993년 3월말 경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부강농공단지현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현재까지 놀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처제 살인

처가와도 평소 원만한 관계였으며, 처가가 있는 청주시로 버스를 타고 가 벼농사를 하는 장인어른의 일손을 거들고, 처제들이 이 씨의 집에 반찬을 들고 찾아가는 등, 친족 간의 교류도 원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판기록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청주 처제 살인사건 당시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춘재는 2살배기 아들을 멍들 정도로 두들겨 패고,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아내가 하혈할 정도로 마구 폭행했다고 합니다.
당시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이춘재에게 심한 성도착증도 있었으며, 아내를 강간을 해서 아내가 훗날 울면서 형사에게 알렸을 정도였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는 1993년 12월 집을 나갔으며, 이춘재는 아내에게 협박 전화를 걸고 동서에게 "아내와 이혼은 하겠지만 다른 남자와 재혼할수 없게 문신을 새기겠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처제 살인사건 당시 재판 판결을 보면, '한번 화나면 부모가 말리지 못할 정도로 포악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가족들이나 지인들의 진술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말썽 한번 안 부리고 모범수로 지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위계질서에 철저히 순응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자신보다 명백히 위이거나 동등한 지위인 가족들과 지인, 경찰, 교도관들 앞에서는 얌전히 지냈지만, 자신보다 명백히 아래로 규정된 사람에게는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단순히 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 정도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시 경찰 관계자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지목한 점은, 이춘재는 범행 후에도 반성이 없었으며, 잡힐 때마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는 점입니다.

처제의 시체를 유기한 다음 날 장인어른을 찾아가 "도와드릴 일 없냐"는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실종신고를 냈으며, 경찰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이춘재의 집 세탁기 받침대에서 혈흔을 발견했고 당시 최신 기술이던 DNA 분석/대조 기술을 근거로 그것이 처제의 혈흔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후에 다시 "경찰관들이 고문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허위자백"이라고 말을 바꿔 재판을 3심까지 끌고 갔습니다.

강도 혐의로 체포됐을 당시에도 이춘재는 흉기와 목장갑을 들고 집안에 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남자가 나를 갑자기 폭행했고 이 때문에 집에 우연히 들어갔지 강도질하려고 들어가지 않았다." 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했습니다.
이춘재는 1, 2심에서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대법원에서 계획범행은 인정되나, 계획 살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판단하여 파기환송했습니다. |
대법원 1995. 1. 13. 선고 94도2662 판결 결국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확정되었습니다. 

성폭행 또는 성폭행 결합 살인 범행을 저질러왔던 이춘재에게 단순 강도는 이질적 범행이기에 이것도 원래는 성폭행 목적의 주거침입이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춘재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입니다.
무기징역을 받은 경우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며, 이춘재는 모범수로 지냈으므로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가석방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가석방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으므로 영원히 교도소에서 사회와 격리돼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2019년 9월 18일, 경찰은 청주시에서 1994년에 처제를 강간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라고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 5차(1987년), 7차(1988년), 9차(1990년)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과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구체적인 신상 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1994년 청주에서 위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1명뿐이라 언론을 통해 그 실명과 정보가 공개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거의 모든 범죄자가 신상공개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1일, 자백을 하면서, 무려 30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그가 자백을 했던 시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춘재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그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건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다른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에 처해졌으므로 사실상 가석방을 평생 불허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죄값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이춘재 근황

원래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파기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당연히 당시 대법원에서는 그가 화성 연쇄살인범인지 알 수 없었고, 처제 1명을 살해한 살인범으로서 재판한 것입니다.
당시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이춘재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건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었겠지만, 그 감형 덕분에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확실히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는 실제로 사형 집행을 하던 시절이므로, 이춘재의 사형이 확정되어 1995년, 1997년에 사형이 집행되어 없어졌다면 다른 여러 사건의 진범은 영원히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김영삼 정부시절 저지른 범죄로 사형이 집행된 케이스는 지존파처럼 극악적으로 잔혹한 경우입니다.
물론 이춘재가 그 시절 연쇄살인을 모두 자백했다면 저때 집행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역설적이게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직접적 피해자들부터 유족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울분을 풀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이춘재가 무기징역으로 생존한 덕입니다.

2020년 7월 2일, 경찰의 재수사가 종료되었고, 이춘재는 7월 5일 수원구치소에서 부산교도소로 옮겨와 독거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부산교도소 측에 따르면 이춘재는 재수사 후 특별히 변화되거나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건강 상태는 양호하고 운동·취침 등 통상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일상은 주로 TV 시청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뉴스는 거의 보지 않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다만 교도소 측은 그의 심적 변화를 우려하여 재수사 결과가 발표될 때는 운동 시간을 편성하는 식으로 TV 시청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의 피해자의 오빠가 이춘재와의 접견을 신청했고 이춘재가 이를 수락해서 최초로 유족과의 접견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춘재는 의외로 유순하고 협조적인 태도였다고 합니다.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모르겠으며, 그 날 자신을 만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며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어이없고 화가 나는 대답이지만, 본인은 솔직한 대답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11월 2일, 8차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영화 살인의 추억을 교도소에서 봤다고 밝혔습니다.
보고 특별히 느낀 점은 없었고, 일반적인 영화라고 생각했으며, 비가 오면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한다는 부분 등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신경 써서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자신을 대신해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 후 출소한 윤모씨에게도 사과했습니다.

 

 

꼬꼬무 시즌3, 83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꼬꼬무' 이야기 친구 게스토로는 개그맨 이용주, 배우 윤시윤, 가수 치타가 친구로 함께 했습니다.

웹예능계의 대세 개그맨 이용주가 장도연의 이야기친구로 '꼬꼬무'를 찾았습니다. 
그는 등장부터 천대(?)를 받으며 오자마자 모두를 피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꼬꼬무' 첫 출연으로 한껏 들뜬 것도 잠시, 연신 밝혀지는 진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유창한 화술을 자랑하던 이용주의 귀를 사로잡은 그날의 이야기를 공개헀습니다.

윤시윤은 장현성의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습니다. 
'꼬꼬무 열혈 애청자'로 마치 TV 보는 느낌이라며 조금은 긴장한 모습을 보인 그는 이내 최강 꼬물이답게 누구보다 몰입하고 공감했습니다. 선한 미소를 늘 머금고 있는 윤시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꼬꼬무 4회차 출연' 치타는 여유로운 발검음으로 장성규의 이야기친구로 자리했습니다. 
'꼬꼬무' 단골손님답게 고도의 추리와 촉을 발휘한 치타에 장성규는 "치타는 직업을 잘못 찾은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치타는 경찰청이 탐낼 인재상 면모를 뽐내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믿음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이춘재 프로필

생년월일(출생일): 1963년 1월 31일
나이: 61세
고향(출생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
키: 173.1cm
몸무게: 71.2kg
혈액형: O형
가족: 어머니(1943년생), 남동생, 아내, 아들(1991년 생)
종교: 불교
인명피해: 15명 살해
수감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부산교도소
형량: 무기징역
학력: 청룡국민학교 1976년 졸업, 안용중학교 1980년 졸업, 삼일실업고등학교 1983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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