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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꼬꼬무 원진레이온 남양주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 사라진 308명 산업재해 사건 직업병 산재 사태 85회 게스트(박흥식 근황)

by 충격대예언 2023. 6. 29.

꼬꼬무 원진레이온 남양주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 사라진 308명 
산업재해 사건 직업병 산재 사태 85회 게스트(박흥식 근황)

[글 포스팅 순서]

1.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사라진 308명
2. 원진레이온 사건의 개요
3. 원진레이온 사건 문제 및 피해
4. 원진레이온 사건 이후
5. 꼬꼬무 시즌3, 85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6. 박흥식 근황 자녀 가계도 프로필


7. 문경 십자가 살인 사건 꼬꼬무 산골짜기 미스터리 십자가 자살 채석장 84회 게스트
8. 꼬꼬무 이춘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프로필 63년생 직업 학교 아들 근황 83회 게스트 살인의 추억
9. 꼬꼬무 한필화 한필성 한계화 이산가족 상봉 남매 우리는 만나야 한다 82회 게스트(나이 프로필)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사라진 308명

6월 29일 방송될 '꼬꼬무' 85회는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사라진 308명' 편으로, 40여 년 전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을 다뤘습니다.

사망자가 무려 300여 명, 피해자는 무려 900여 명에 이르렀지만 오랜 시간 동안 원인을 몰라 '보이지 않는 살인'으로만 알려졌던 그 사건은 바로, 남양주 최대의 인견사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재 사건입니다.
'꼬꼬무'에서는 원진레이온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재,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낭만닥터와 노동자들의 눈물겹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때는 1970년 여름, 남양주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기절했습니다. 
지나가다가, 밭일하다가, 앉아 쉬다가, 순식간에 쓰러진 사람 수만 80여 명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마을, 꽉 막힌 배수구를 뚫으러 맨홀에 들어간 세 사람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주민 동환 씨는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에 이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상황을 맞닥뜨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눴던 40대 주부 고 씨가 화장실 수도꼭지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입니다. 이 마을에서 고 씨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은 무려 12명이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들은 1966년 이 마을에 원진레이온 공장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직원 수 1,500명에 면적은 무려 15만 평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라고 불렸던 원진레이온은 당시 국내 유일의 인견사(레이온) 제조업체로 부드러운 양복 안감, 속옷에 쓰이는 실을 생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서 심상찮은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극심한 두통, 손발 마비,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명, 수백 명까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당동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며 아픈 덴 많고 돈은 없는 빈민층 환자들을 진료해주던 김록호 원장. 
어느 날 원진레이온을 다니던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김원장은 그들의 증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말은 어눌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도무지 원인은 몰라 답답해하던 김원장은 혼자서 고군분투한 결과 신체마비, 자살경향, 심지어 즉사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레이온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황화탄소 때문임을 알아냈습니다.

이후,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기업을 상대로 긴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든든한 주치의'로 끝까지 함께 한 낭만닥터 김록호 원장과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살인자'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원진레이온 사건의 개요

경기도 미금시 도농동, 지금동 일대에 있었던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의 합성섬유 공장에서 일어났던 산업재해 사고입니다. 국내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여겨지는 꽤나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회사의 시초는 1964년 화신그룹의 창업주 박흥식이 일본 도레이에서 노후된 비스코스 인견을 제조하는 설비를 들여와 2년 뒤인 1966년 공장을 세워 운영한 것인데, 정작 박흥식은 1년만에 이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이때는 원진레이온이 아니라 흥한화학섬유(興韓化學纖維)라는 회사의 공장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설립 초기부터 경영 부실이 있어서 한국산업은행의 법정 관리를 받다가 인수되어 세진레이온으로 바뀌다가 원진레이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소유주가 한국민속촌 회장을 지낸 정영삼, 코오롱그룹의 창업주 이원만의 동생 이원천 등으로 소유권이 바뀌었으나, 1979년에 한국산업은행에게 법정 관리를 더 받았습니다.

이후 박흥식은 사업에서 실패하는데, 물론 그래도 1989년 당시 집 매각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35평형이 3억하던 시절) 무려 30억을 받았다고 하니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던 듯합니다.

원진레이온 사건 문제 및 피해

설립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노후된 기기에서 발생한 불순물인 이황화탄소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직원 대부분이 가스에 중독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산업재해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자 8명에 장애판정 637명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언어장애, 반신/전신 마비, 정신 이상 등의 증세를 보였습니다.

이황화탄소의 발생과 그 유해함을 회사 측에서도 알기는 한 모양인지, 환기 설비를 설치하긴 했으나 문제는 거꾸로 설치하는 바람에 바깥으로 나가야 할 이황화탄소가 도로 안으로 들어오는가 하면, 격무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기계에 머리를 박고 일했기 때문에 환기 장치의 유무와 상관없이 기계에서 스며나오는 이황화탄소를 직접 들이마시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공장이라면 환기 장치로 독가스를 빼낸 후, 중화시켜 무독한 기체만 공장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후드 같이 빨아들이는 환기장치는 유해물질 바로 위나 옆에 설치하는 게 원칙입니다.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 사망자와 재해자는 위에서 소개한 수치보다 훨씬 많습니다. 
김봉환은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1991년 사망했고, 같은 해 권경용은 방에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극약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1992년 고정자는 정밀검진을 받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목욕탕 수도꼭지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몸이 아프고 죽을 것 같아서 퇴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회사는 약간의 보상금으로 입막음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구리, 도농 주민 상당수가 이 회사의 일자리에 의존했기에 회사의 은폐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1981년 첫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나왔는데, 노동부는 1986년 25,000시간 무재해 달성으로 원진레이온을 표창했습니다.

그러나 사지 마비, 정신 이상, 기억력 감퇴, 콩팥 손상 등의 이황화탄소 중독 증상이 십수 년 동안 여러 명에게서 나타났고, 그중 몇명이 1987년 정부에 진정함으로써 원진레이온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노동부는 조사에 나서 원진레이온의 위법 사실을 파악, 발표하였지만 산업재해의 인정과 보상에는 인색했습니다.
피해 노동자들은 1개월간의 요양치료를 받고 산재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황화탄소 중독이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했지만 노동부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재요양신청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1991년 김봉환 노동자의 장례투쟁과 권경용 등 노동자 3명의 산재피해 폭로 등을 계기로 국회는 진상조사 후 <원진직업병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고, 정부도 산업재해/직업병 예방대책을 내서 원진 전/현직 노동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면서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직업병 환자들을 더 발견해냈고, 1992년 인정기준 개정투쟁을 거치면서 정부도 직업병 인정기준을 개정했습니다.

결국 회사는 1993년 6월 8일 폐쇄와 동시에 폐업되었고, 많은 노동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섬유, 의류 업계에 종사했던 타사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매우 나빴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더 섬뜩한 것들이 많은데, 영업사원으로서 원진레이온에 계약차 방문했더니 노동자들의 비중격(鼻中隔)이 녹아내려 콧구멍 사이에 구멍이 뚫리는 바람에 마치 만화에 나오는 식인종들처럼 콧구멍 사이에 볼펜을 끼워놓고 다니더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원진레이온 사건 이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피해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직업병을 얻어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인 원진재단이 만든 병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웃한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원진녹색병원입니다.
이 병원이 설립된 이유가 산재 노동자와 관련되어 있어, 축하공연 당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민중가요 가수들이 초청되었습니다.

1993년에 원진레이온이 폐쇄된 이후 부지는 방치되었고, 1996년에 부영에서 이 토지를 매입해 1998년부터 아파트를 건설했습니다. 2000년 가을 이후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과거의 악명이 지역 주민들에게 잘 가시지 않다 보니 입주를 꺼리는 편이었으나, 수도권 전철 중앙선 개통 1~2년 전부터는 제법 자리를 잡아갔고 이후 중산층 거주지로 그럭저럭 남게 되었습니다. 

레이온은 국내에서는 유지 중인 공장은 없고 원사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산 원사가 많이 수입되고 있습니다. 국내산 인견이라고 해도 실 자체는 대부분 중국산이고, 그 원사로 천을 만들고 염색을 한 후 옷이나 원단을 만드는 공정이 국내에서 이루어지는지라 국내산이라고 표기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내의 레이온 공장이 전부 문을 닫았고, 특히 원진레이온의 설비는 폐업 후 1994년 라전모방이 경매로 낙찰받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국영 화학섬유총공사에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한국보다 몇 배나 더한 온갖 질병이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1999년에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가 답사하여 공장 인근에서 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했으나, 이들은 한국 수입 사실을 알았지만 유해성에 대해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월간중앙> 2014년 9월 17일자에 의하면 북한으로 기기가 흘러들어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만화가 박재동은 만평 <한겨레그림판>에서 노동자의 감사의 말 형식으로 이 사건을 비판했습니다.

꼬꼬무 시즌3, 85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꼬꼬무 85회 이야기에 함께 할 이야기 친구 게스트는 배우 한혜진, 배유람, 정영주다.

한혜진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자리했습니다. 
장성규는 학창 시절 한혜진이 '강남 4대 천왕'에 전국구였다며 한혜진을 향한 팬심을 잔뜩 표출했습니다. 
한혜진은 장성규의 칭찬 폭탄에 부끄러워하기도 잠시, 이야기에 몰입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끝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는 배유람입니다.
배유람은 이날 초면인 장도연과 반말 모드로 진행되는 녹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예능감을 발휘하며 오히려 장도연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에 약하다는 배유람은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는 정영주가 등장했습니다. 
신나게 노래하며 '꼬꼬무' 스튜디오에 등장한 정영주는 장현성과 뮤지컬 케미를 보여줬습니다. 
정영주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낭만닥터 김록호의 열혈 팬이 되어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녀 역시 안타까운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박흥식 근황 자녀 가계도 프로필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거부로 불렸던 사람이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체포 대상 1호로 잡은 친일 기업인.
신문을 통해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표현하기도 했고, 일본인과의 내선결혼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1942년에는 쇼와 천황과 악수를 한 적도 있다.

민족자본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백화점이며 일제 시기를 다룬 사극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화신백화점이 바로 이 사람 소유였다. 백화점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큰 규모인 전국 350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가 하면 해외무역을 시도하는 등 그야말로 조선 반도의 유통업을 지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는데, 물론 이러한 승승장구는 허가제 등을 적절히 활용한 조선총독부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친일자본가였다.

 1920년대부터 박흥식은 조선총독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일행위가 노골화된 것은 중일전쟁 이후. 1937년 중추원 참의가 되었고,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용비행기 헌납운동(소위 애국기 헌납운동)에 앞장선다. 친일 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이사를 맡았고,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도 가담했다. 
전쟁 말기 친일 인사들의 총본산이었던 임전대책협의회와 조선임전보국단의 이사를 지내고 고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기간 중 조선총독부 기관자인 《매일신보》에 대한 기고 활동과 각종 간담회 참여로 전쟁을 지원했다. 
1944년 종로의 인사들이 학도병을 독려하기 위해 조직한 종로익찬위원회의 회원이 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2015년작 영화 암살의 등장인물인 강인국의 모티브이다.
극중 강인국은 비행기를 일본에 헌납하는 앞잡이로 나오는데, 실제 박흥식도 조선비행기공업회사를 세워 비행기를 헌납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어 1949년 1월 5일부터 시행됐는데, 박흥식은 1월 11일 제 1호로 구속 수감된다. 박흥식이 제일 먼저 체포된 이유는 미국 도피를 준비 중이라는 소문과 함께, 미군정 수도경찰청 청장을 지낸 장택상의 형 장직상과 만나거나 현직 경찰 최난수에게 수사금을 지원하여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박흥식은 다른 반민족행위자들과 함께 매일 특별검찰들의 엄중한 취조를 받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반민특위 활동은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에 의해 활동이 유야무야된다.
박흥식은 구속 3개월 만인 4월 21일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며, 그 해 9월 26일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 박흥식 생년월일(출생일): 1903년 8월 6일
2. 고향(출생지): 평안남도 용강군 산남면 학옥동 387(現 남포시 용강군 옥도리)
3. 사망1994년 5월 10일 (향년 90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4. 박흥식 부인(아내): 妻 김낙선 (1905-1952), 한인하 전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1915 ~ 2010)

5. 박흥식 아들(자녀):
1남 박병석 흥한재단 및 광신학원 이사장
2남 박병찬 전 화신산업 전무

6. 박형식 딸:
1녀 박병숙 (전 화공회 이사장) / 夫 장병찬 (이천전기 회장) / 子 장세창 (이천전기 회장/파워맥스 회장)                 
2녀 박영숙
3녀 박혜숙
4녀 박봉숙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 夫 전순재 (연합해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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