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꼬꼬무 범인 조승희
외톨이가 보낸 소포 90회 게스트
[글 포스팅 순서]
1. 외톨이가 보낸 소포-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2. 총기 난사사건 조승희 범행 과정
3.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여파
4. 조승희 프로필
5. 조승희 생애: 범행의 원인은?
6. 꼬꼬무 시즌3, 90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7.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 범인 꼬꼬무 손예연 손수정 영화 화차 실화 조명 89회 주호민 게스트
8. 윤노파 사건 살인사건 범인 꼬꼬무 원효로 윤보살 피살 사건 미제사건 88회 게스트 재방송
9. 꼬꼬무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베를린 올림픽 보스턴 마라톤 대회 프로필 87회 게스트
외톨이가 보낸 소포-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8월 3일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90회 에서는 '외톨이가 보낸 소포-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편으로, 지난 2007년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국인 유학생 조승희가 벌인 총기 난사 사건의 끔찍한 참상과 충격적인 그날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때는 2007년 4월 15일, 미국의 한 대학교 캠퍼스는 축제로 인해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이날의 축제는 여러 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행사로, 한국인 유학생 승우 씨와 규민 씨도 부스 운영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고생했어!
다음 주에 보자!
불고기 시식, 제기차기 체험 등 1년 내내 준비한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행사 준비 때문에 미뤄둔 과제가 한 가득이었던 규민 씨는 서둘러 열람실로 가 밤을 새우며 과제를 완성했습니다.
과제도 마무리했겠다, 슬슬 집에 갈 채비를 하려던 그때, 누군가 다급히 열람실로 들어와 말했습니다.
규민!
지금 절대로 나가면 안 돼!!
문제가 생겼으니 밖으로 나가지 말고 건물 안에서 대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각, 건물 밖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부아아아앙'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학교로 향하는 경찰차들.
하지만 교내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학교 측은 별다른 공지 없이 정상 수업을 하도록 했고, 캠퍼스는 곧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였습니다.
당시 1교시 수업이 있던 독일어 강의실 안, 그날따라 유난한 공사 소리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벌컥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는 강의실 안을 살펴보는 한 남학생, 그는 강의실을 스윽 둘러보고는 곧 문을 닫았습니다.
강의실을 잘못 찾은 학생이겠거니 예삿일로 넘기고는 수업이 재개됐고, 모두가 다시 집중하려는 그때 또다시 벌컥 문이 열리더니 아까 그 남학생이 들어왔습니다다.
강의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남학생에게 쏠리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눈앞이 번쩍 학생들을 향한 무자비한 총격이 시작됐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미국의 버지니아 공과 대학교입니다.
9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32명의 학생과 교수를 무참히 살해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의 범인은 바로, 한국인 유학생 조승희였습니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인 사회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가 되었다. 조승희, 그는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곧이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총기 난사사건 조승희 범행 과정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에 위치한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입니다. 교내의 웨스트앰블러존스턴 기숙사와 노리스 홀에서 순차적으로 총기 난사가 발생해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 당했다. 범인은 한국인 조승희로 밝혀졌고 사건 직후 자살했습니다.
2007년 2월 2일, 조승희는 인터넷으로 발터 P22 권총을 구매했으며, 해당 권총은 1주일 후인 2월 9일 배송되었습니다.
물론 버지니아 주 법으로는 합법적인 경로입니다.
버지니아의 법 자체가 총기 소지에 대한 규제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버지니아에서도 총기 구매자에 대한 각종 검사를 하지만, 버지니아 법원이 조승희의 정신 병력에 대하여 공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기 구매에 제약이 없었습니다.
이후 3월 13일에는 글록 19 권총과 9×19MM 파라벨럼의 표준 탄약인 9MM 풀 메탈 재킷탄 50발을 구입했습니다.
두 권총 구입에 1달 정도의 텀이 있는데, 당시 버지니아 법으로 권총은 1달에 하나밖에 구매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3월 22일에는 글록 19의 15발들이 탄창 4개를 오프라인으로 구입하고 발터 P22의 10발들이 탄창 2개도 이베이에서 구입했다. 3월 23일에는 또 이베이에서 10발들이 탄창 3개를 구입했습니다.
이후 3~4차례에 걸쳐 범행에 쓸 탄환도 구입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으로는 총 500여발에 달했습니다.
이때 구입한 총알은 대부분 할로 포인트였습니다.
조승희가 NBC에 보낸 사진 중에는 이 할로 포인트 탄을 찍은 사진도 있었고, NBC에 보낸 선언문에는 "나에게 준 온갖 더러운 것들을 할로 포인트 탄으로 돌려준다 (All the shit you've given me, right back at you with hollow points)."는 문구도 있었습니다.
1번째 총격은 현지 시간으로 오전 7시 15분에 있었습니다.
조승희는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에 있던 에밀리 제인 힐셔의 방에 들어가 글록 19로 그녀를 저격하여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그 뒤, 총소리를 듣고 나온 기숙사 사감 대학원생인 라이언 C 클라크에게도 총을 쏴 즉사 시키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에밀리 힐셔는 총격을 받고도 살아 있었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뒤 3시간 만에 과다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일부 언론에는 에밀리가 조승희의 여자 친구라거나 조승희의 구애를 거부하여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경찰 측의 수사결과 에밀리 제인 힐셔는 조승희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밝혀 졌습니다.
에밀리의 룸메이트인 헤더 하우가 7시 30분에 기숙사에 왔을땐 이미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중이었다. 헤더 하우는 경찰관에게 에밀리의 남자 친구인 칼 던힐이 2주 전에 총을 가지고 사격 연습을 하는 걸 봤다고 증언하며 의도치 않게 수사에 혼선을 빚었고, 경찰관은 흔한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파악하고 에밀리의 남자 친구인 칼 던힐을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칼 던힐의 신병을 확보한 뒤 심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경찰관이 엉뚱한 사람을 잡는 동안 조승희는 2차 범행을 준비했습니다다.
2번째 총격이 벌어질 때까지 약 2시간의 시간 간격이 있었는데 조승희는 자신의 노트북에 있는 자료를 일부 삭제하고 하드디스크를 탈거하고, 피 투성이가 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편지와 사진을 넣은 소포를 USPS 익스프레스 배송으로 NBC 방송국으로 부치느라 우체국에 다녀왔습니다. 발송 시간은 오전 9시 1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NBC 방송에서 보도한 조승희의 사진이 바로 여기 들어 있었던 것들입니다.
이때 학교 측은 총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숙사가 대학과는 떨어져 있었기에 학교 전체에 대한 비상 사태를 발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 당시 경찰관은 조승희가 학교 바깥으로 도주한 걸로 판단하고 주변에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 경찰관들을 파견했습니다.
이러한 학교 측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2번째 총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체국에 다녀온 조승희는 배낭에 물건을 챙겨서 노리스 홀로 갔습니다.
그가 챙긴 물건은 체인, 자물쇠, 망치, 전투 나이프, 발터 P22, 글록 19, 10~15발씩 들어있는 탄창 9개와 여분의 탄환 400발입니다. 9시 40분에 노리스 홀에 도착한 그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 3개를 사슬로 칭칭 감아 자물쇠로 잠가놓고는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빈 강의실에 들어가서 배낭에 넣어 둔 낚시 조끼를 입고 주머니 마다 탄창을 가득 채운 뒤, 다시 배낭을 메고 2층 복도를 지나 다니며 각 강의실을 엿 보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습니다.
207호에 있던 에린 시한 (Erin Sheehan)은 강의실을 엿 보면서 돌아다니는 조승희를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한 조승희는 복도 끝의 남자화장실 앞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준비한 권총 두 정을 꺼내 무장했습니다
조승희가 처음으로 들어간 강의실은 206호였습니다.
그곳에는 G V 로가나탄과 학생 13명이 있었습니다.
206호에 입장 후 조승희는 문간에 자리를 잡고 발포하여 학생 7명을 죽이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막아서는 G V로가나탄 교수에게도 총을 쏴 죽였습니다.
강의실을 나가기 전에 아수라장이 된 강의실 안을 향해 몇 발을 더 쐈지만 모두 빗 나갔습니다.
복도로 나간 조승희는 도망 가는 학생들에게 발포했고, 그 중 한 발이 자말 카버의 팔에 맞았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무사히 계단으로 도망 쳐서 살아 남았습니다.
그 다음 조승희는 205호에서 내다 보고 있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발포하지만 모두 빗나갔습니다.
사태를 직감한 205호의 교수와 학생들은 의자와 책상을 동원하여 바리케이트를 쌓아 문을 막았습니다.
조승희는 207호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강의하고 있던 제임스 비숍 강사를 살해하고, 그곳에 있던 학생 4명도 살해했습니다. 이 때 3층에 있던 케빈 그라나타는 약 20명의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실로 안내해서 문을 잠그라고 하고 다른 교수인 윌리 그랜트와 함께 아래 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207호에서 나오던 조승희와 마주치고, 조승희는 케빈 그라나타 교수의 머리에 총을 쏴서 살해했습니다.
이윽고 윌리 그랜트 교수에게도 총을 쏘고 등에 맞았지만 그랜트 교수는 근처에 있던 남자 화장실로 피신하여 살아 남았습니다. 이곳은 조승희가 범행 직전 무장할 때 배낭을 놔뒀던 곳이었습니다.
그라나타 교수의 연구실에 숨은 학생들은 모두 살아 남았습니다.
이때 211호 입구에서 조셀린 쿠튀르누아크가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을 발견한 조승희는 바로 그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조셀린 쿠튀르누아크 교수는 학생들에게 모두 바닥에 엎드리라고 이야기했고, 교수와 학생 중 1명인 헨리 리는 문 앞에 책상을 쌓아 문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케이트를 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이내 조승희가 밀고 들어오면서 교수와 헨리 리는 책상에 밀려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조승희는 쓰러진 교수와 헨리 리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했습니다.
강의실에 있던 매슈 러포트는 조승희를 넘어 트리려고 달려들지만 조승희는 그를 향해 여러 차례 총격을 가해서 쓰러 뜨렸습니다. 이후 책상 사이 사이에 숨어 있는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해 9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이후 조승희는 206호로 다시 돌아 와서 살아 있던 학생들에게 발포했습니다.
이 총격으로 2명이 더 사망했습니다.
이후 207호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살아 남은 학생들이 문을 단단히 막고 있었습니다.
조승희는 문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총알이 문을 뚫고 들어가 6명의 학생들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이후 205호로 이동하지만 이미 이 강의실은 문 앞에 단단한 바리케이트가 있어서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조승희는 문을 향해 발포했지만 총알이 바리케이트를 뚫지 못했고, 205호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조승희는 204호로 이동했는데, 이때 이 강의실에서 가르치던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학생들에게 창문으로 뛰어 내리라고 이야기했고, 학생 대다수가 창문을 통해 탈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2층에서 뛰어 내리느라 부상 당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목숨은 건졌습니다. 조승희는 문을 막아선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에게 4발의 총격을 가해 쓰러 뜨리고, 쓰러진 교수의 머리에 총격을 가해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3명의 학생에게도 총격을 가해 1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는 부상을 입혔습니다.
204호를 나온 조승희는 또 다시 206호로 다시 돌아 가서 아직 숨어 있던 학생들에게 총을 쐈습니다.
이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때가 9시 50분 경이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하여 노리스 홀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슬로 잠긴 문을 열 수 없어서 1층 실험실에 있는 잠긴 쪽 문의 자물쇠를 총으로 부수고 진입했다고 합니다.
206호에서 나온 조승희는 211호로 다시 돌아가서 아직 살아 있는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이 총격으로 2명이 더 사망하고, 4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때 경찰이 진입하는 소리가 들리자 조승희는 206호 강의실의 문을 닫은 뒤 자신을 덮치려고 하다가 죽은 매슈 러포트의 머리에 총을 발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창 밖을 바라보며 왼쪽 관자 놀이에 총을 대고 발사하여 자살했습니다.
그는 총기를 174발을 난사해서 이곳에서만 30명을 죽이고 29명을 다치게 했습니다.
사망한 30명 중 28명이 머리에 총탄을 맞아 사망하였고, 사망한 이들 모두 3발 이상의 총격을 받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노리스 홀 수색 결과 재장전하고 버린 빈 탄창을 17개 발견했고, 남자 화장실 앞에 놓아둔 배낭에서 203발의 총알이 더 발견되었습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여파
이 사건으로 현지 한인들이 신변에 불안함을 느꼈고 여행객들도 미국 여행을 많이 취소했다고 전해졌습니다.
일부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 잠깐 "한국은 악의 축", "김치에는 독성이" 같은 반한 감정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서도 미국은 워낙에 총기 난사가 넘치고 그동안 백인이 일으킨 총기난사 사건이 훨씬 많은데 그 사건들 일으킨 백인들은 놔두고, 왜 다른 인종이나 그 나라에 반감정을 갖추었느냐는 지적이 나와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총기 소지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라며 "법이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총기 규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어 나기도 했습니다.
기사 총기 규제 때문에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이 사라진다는 논리로, 총기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총기 규제론에 반대해 대두되는 주장입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에서는 마치 한국이 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한국 정부에서도 사과의 뜻을 전했는데, 이는 미국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국가와 개인을 묶는 한국인과 한국 정부의 행동에 미국 언론은 일제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당시 초청된 일본인 사회 학자가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의 공동체 의식'이라는 답변을 했고, 다민족 국가와 단일 민족 국가의 국가론에 대한 차이가 사회학의 관심 분야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학술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반한 감정을 재빨리 잠재우고 이 사건을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전반적 적개심이 아닌, 정신질환자의 일탈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일조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는 보안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인 2007년 5월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배경으로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맵을 만든 학생이 부모의 신고로 정학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게임일 뿐이었는데도 테러 위협으로 간주한 경찰을 보면 이 당시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분위기가 흉흉할 때, 하필이면 총을 쏘거나 폭탄을 설치하여 터뜨리는 것이 주 컨텐츠인 게임에서 자기 학교 맵을 만들어서 배포했으니 충분히 예비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5년 뒤에 터진 오이코스 신학대학 총기난사 사건 역시 한국계가 저지른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이 버지니아 공대보다 역사, 규모, 재정, 인지도 등등 그 모든 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작은 대학교이라 그런지 묻혔습니다.
물론 피해자 규모도 적었다고 해도 낮은 인지도에 미국 교육부 인가조차 받지 못하던 오이코스 신학대학교(설립자부터도 한국인 목사다.)이었기에 잊힌 지 오래되었습니다.
조승희 생애: 범행의 원인은?
1984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現 아산시 온양4동)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아산에서 살다가 이주하여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거주하던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입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평범한 소시민이었습니다.
그의 누나는 아이비리그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여, 펜타곤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들로만 놓고 본다면 나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모범적인 이민자 가정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조승희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과묵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삼촌은 그가 '열린 사회'인 미국에 가서 자신감을 되찾기를 기대했다고 합니다.
9살 나이의 그는 낯선 미국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당시 영어를 못하던 그는 매우 조용했고 그런 그를 학교에선 문제아로 여겨 특수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학교의 상담 프로그램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서럽던 시기를 잘 극복했습니다.
5학년이 된 조승희는 수학과 영어에 특히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교사는 그를 다른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급우인 김경원에 의하면, 교내에는 3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있었으며, 아무도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김경원은 당시 조승희에 대하여 좋았던 기억밖에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조승희는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조승희의 성격에서 시작된 학교폭력은 조승희를 극심하게 괴롭혔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선택적 무언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를 향한 학폭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급우들은 반에 그가 나타나면 물건을 던져댔고 그를 넘어뜨리면서 소리치며 비웃었습니다.
그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계속 불러도 대답을 아예 거부하자 참다 못해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낙제 점수를 주겠다는 교사의 경고에 마지못해 책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며, 마치 무언가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자신감 없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그를 조롱했습니다.
학교에서 그가 심한 따돌림을 당하는 걸 걱정하던 그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Okay"가 다였다고 합니다.
그를 답답해하던 아버지는 그를 꾸짖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커질 뿐이었습니다.
조승희의 부모는 망가진 그를 치료하고자 교회에 보냈지만 교회의 기독교 소년 단체마저도 그를 조롱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승희는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조승희가 버지니아 같은 곳이 아니라 프린스턴 같은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웃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조승희가 입학한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통칭 "버지니아텍" 역시 미국에서 상당한 명문으로 카네기 멜론 대학교 등과 함께 월드 클래스 이공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린스턴이 워낙 명문대이어서 굳이 그 누나와 비교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승희는 대학교 기숙사 룸메이트인 코크에게 자신이 자살할지도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코크는 이를 학교 당국에 신고를 했습니다. 학교 당국은 조승희를 정신 감정을 담당하는 지역위원회로 데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조승희는 '심한 우울증'과 '무감각증(flat affect)'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조승희는 이런 진단을 부인하였지만 결국 버지니아 주의 정신건강센터에 수용되었습니다.
버지니아 주 판사는 조승희가 외래환자로서 성실하게 정신과 치료에 임한다는 조건 하에 퇴원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조승희는 정신건강센터에 구금된 지 하루만에 풀려났습니다.
조승희는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NBC에 보낸 영상에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스냅사진들과 '선언문'을 낭독하여 자신의 뜻을 설파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선언문의 내용은 NBC가 일부 검열한 것으로, 보도된 내용은 원래 선언문의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당시 NBC 사장은 "검열된 선언문에는 극도로 폭력적인 이미지와 저속한 욕설이 들어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나오길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디오와 함께 동봉된 각 사진에는 조승희가 적은 캡션이 달려 있었는데, 자신들을 괴롭힌 불특정 다수와 그의 관념 속 '위선적인 기독교도 부유층 주류 세력'에 대한 원망과 저주, 자기연민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역시 대다수 언론 보도에서는 검열되었습니다.
대학 기숙사 엠블러 존스터홀에서 여학생 에밀리 제인 힐셔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조승희는 204, 206, 207, 211호실에서 5명의 교수와 30명의 학생을 살해하는데, 그는 언제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를 제일 먼저 살해했고, 그 후 학생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인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문을 막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간다든지, 이미 죽은 학생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생존자들은 조승희가 증오도 분노도 아닌 멍 때리는 듯이 텅 빈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쏠 때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안녕, 잘 지냈니?"
범행 이후 조승희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쏴서 자살했습니다.
조승희의 시신에서는 붉은색 잉크로 적힌 '이스마일 액스(Ismail Ax)'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그가 언론사에 보낸 택배에서도 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오갔습니다.
조승희 본인의 선언문을 보면, 그는 주류 기독교 사회에서 벗어난 외부인으로서의 아이콘인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자신은 미국의 테러리즘과 싸우는 안티테러리스트(anti-terrorist)라며 이 이름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Ax를 나머지 이름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총이든 칼이든 날카로운 물건이면 뭐든 잡고 일어나 싸워라'라는 성명서의 내용을 보면 흉기로써의 도끼를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그는 '안티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숫자'라면서 88이라는 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가 이 범행을 통해 스스로를 아이콘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조승희 프로필
생년월일(출생일): 1984년 1월 18일
고향(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4동
사망: 2007년 4월 16일
국적: 대한민국
본관: 한양 조씨
키: 173cm
몸무게: 68kg
혈액형: O형
가족: 아버지 조성태, 어머니 김향임, 누나 조선경
학력: 서울 신창초등학교 중퇴, 포플러 트리 초등학교 졸업, 오몬드 스톤 중학교 졸업
웨스트 필드 고등학교 졸업,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영어영문학 재학중 자살
종교: 기독교
범죄: 대량 살인(32명 사망, 29명 부상)
꼬꼬무 시즌3, 90회 게스트 이야기 손님
이번 장트리오의 이야기에 함께 할 이야기 친구 게스트는, 가수 딘딘, 배우 공승연, 송영규입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딘딘이 '꼬꼬무'에 자리했습니다.
어린 시절 유학 경험으로 유창한 영어 발음을 자랑하던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인종차별을 회상하며 이야기에 몰입했습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SBS 새 금토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로 돌아온 배우 공승연이 자리했습니다. 오프닝에 공개된 어린 시절 사진에서부터 완성된 미모로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던 그녀는 이야기가 시작될수록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송영규가 장현성의 친구로 다시 '꼬꼬무'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오랜만의 출연으로 장현성과의 절친 케미를 보여주던 그는 어렵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 유족의 인터뷰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미국 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까지 발칵 뒤집은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의 비극적인 참상과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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